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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드디어 알아냈다 천재들 머릿속 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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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생각의 탄생 (원제 Spark of Genius)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455쪽, 2만5000원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창조적인 일에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예술이나 과학 분야에서 남다른 창조성을 발휘해 인류에 기여한 이들의 비결은 누구나 궁금할 것이다. 각각 생리학 교수, 역사학자인 지은이 부부는 천재들을 천재답게 만든 비법을 13가지 '생각도구'로 압축해, 설득력 있게 풀이했다.

그런 만큼 현란하다. 인문교양서인가 싶으면 실용적이다. 물리학.수학 이야기가 나와 과학서인가 하면 난해한 현대음악, 미술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파블로 피카소까지 화가들과 마사 그레이엄 등 무용가, 버지니아 울프 등 작가들의 생각과 업적이 줄곧 이어지니 인문교양서임이 틀림없다. 각 장에는 두뇌 계발 혹은 훈련을 위한 생각거리가 등장하고 책 말미엔 통합교육을 위한 담론이 담겼으니 자기계발서나 교육론으로도 손색없다. 리처드 파인만, 아인슈타인의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기도 하고 제인 구달이 침팬지의 생태를 연구한 비결(감정이입)도 나오니 만만치 않은 과학서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다.

찬찬히 뜯어 읽으면 귀하고 소중하다. 과학.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을 발휘한 인물들의 행적과 연구를 분석해 어떻게 발상해서 이를 구체화했는지 '비결'을 추출해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인 '패턴 인식'을 보자. 관찰.형상화.추상화의 단계를 거친 패턴 인식을 지은이들은 자연의 무질서에서 지각(知覺)과 행위의 일반원칙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한다. 이 관찰과 경험의 틀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일어날 때 새로운 발견이 이뤄진단다.

그 예로 역학(疫學)의 개척한 영국 의사 존 스노우를 든다. 그는 1854년 런던을 휩쓴 콜레라로 죽은 사람들의 거주지를 지도로 만들었다. 그 결과 그들이 모두 오염된 펌프 하나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것을 발견해 콜레라 예방의 길을 열었다. 사망자의 사망 시각이나 장소 등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여기서 패턴을 찾아낸 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학문의 세계를 열어젖힌 것이다.

또 있다. 세계일주가 가능해져 각 대륙의 모습을 담은 지도가 나오자 프랜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폰 훔볼트 등이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의 모양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독일 지구물리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북아메리카.그린란드.유럽도 꼭 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여기에 대서양 양연안의 암석층과 화석군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때 모든 대륙이 하나로 붙어있다가 분리됐다는 획기적인 '대륙이동설'을 주창했고 이는 훗날 '판구조론'에 힘입어 과학적으로 설명됐다.

그런데 지은이들은 학교 교육에 회의적이다. (어느 나라나 교육환경은 같은 모양이다!) 분리된 과목과 공식언어체계에만 기반을 두고, 이해가 아니라 외워서 알게 되는 현행 교육 시스템에선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에서 통합으로 마무리되는 창조적 사고과정을 익힐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들려주는 체험은 어처구니 없다. 물리학 우등생인 동급생이 힘껏 밀었지만 열지 못한 강의실 참나무 문을 다른 학생이 쉽게 열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열었는지 의아해 하는 물리학 수재에게 친구들이 "너는 문 가운데를 밀었고 다른 학생은 가장자리를 밀었다"며 그 원리가 토크(torque.회전하는 힘)임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 수재는 "문의 크기를 x로 놓고 회전축에서 힘이 가해지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y로 놓으면…"하면서 토크방정식을 즉석에서 풀어내더란 얘기다.

지은이들은 현행 제도권 교육이 이처럼 '알기'와 '이해하기', 환상과 실재를 분리시켜 학생들의 총명한 머리를 한쪽만 쓰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마음과 몸, 지성과 직관을 연결하는 능력이 결핍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실제 사용했던 사고의 틀을 찾아낸 지은이들은 이 '생각도구'들이 환상과 실재 사이에 다리를 놓아 통합적 이해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주방기구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해서 요리법을 혁신시킬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독창성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이들도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요리사나 '생각하는 사람'도 장비 다루는 법을 연습하지 않으면 창조적이 될 수 없을 터이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이벤트 등 유니크한 시각으로 이름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이 책을 '보물지도'라 추천한 이유가 납득이 간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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