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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아파트, 지금 팔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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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본을 통해 본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
다치키 마코토 지음 강신규 엮음
21세기북스, 288쪽 1만8000원

이 책은 신화에 도전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 지금까지 이 땅에선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는 신화다. 1980년대까지 일본도 그랬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자 사정은 달라졌다. 일본의 토지신화는 처참한 모습으로 패한 뒤 링에서 아예 내려와야 했다. 사방에서 달려든 도전자들을 당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불황, 고령화, 저출산 등등. 신화가 사라진 자리엔 참상만 남았다.

장면 1. 2004년 4월 도쿄도 주택 회사는 '다마 뉴타운'을 분양했다. 경쟁률은 317.5대 1. 사상 최고였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 아파트는 1993년에 분양에 나섰다. 부동산 버블 붕괴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다. 당시 분양가는 6억 원대. 252가구 중 31가구가 미분양됐다. 그 후 이 아파트엔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았다. 계속 가격을 낮춰가다 마침내 2004년, 1억9000만 원에 '떨이 분양'에 나섰다. 최초 분양가와 비교하면 70%가 할인된 가격이다.

장면 2. 치바현 기사라즈시의 일부 땅값은 최고점에 비해 약 20분의 1로 하락했다. 물가가 20배 오른다 해도 최고점 때의 가격을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버블시기에 8백억 원에 팔린 토지가 현재 40억 원에 나와있는 곳도 있다.

일본 부동산 버블의 탄생에는 엔화 강세가 숨어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고가 급속히 진행되자, 경제 충격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을 마구 풀었다. 이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갔고, 90년대 초 '도쿄의 23개구(區) 땅값이면 미국 본토를 사들이고도 남는다'는 버블 신화를 만들어냈다. 뒤늦게 일본 정부는 돈줄을 조였지만 그게 다시 화근이 됐다. 이번엔 거품이 급속도로 꺼지면서 10년 새 집값이 평균 60% 급락했다. 그 유명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다.

저자는 부동산 신화의 탄생과 몰락 배경으로 일본인의 '내 집 사랑'을 꼽았다. 일본 남자들은 내 집을 '남자의 성(城)'이라고 믿는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10여 년 전은 물론, 버블 붕괴로 곳곳에 싼 중고주택이 널려있는 요즘도 여전히 '내 집'에 목숨을 건다. 저자는 이를 '어리석은 일본 남자들의 법칙'으로 규정했다.

어리석은 건 일본 남자뿐 아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부동산에 관한 한 한국은 일본과 쌍둥이처럼 닮아있다는 것이다. 뿌리깊은 '토지신화'에서 일본을 웃도는 저출산율에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까지. 이는 한국도 일본처럼 곧 주택이 남아돌게 된다는 방증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아파트 값이 10주 연속 하락했다. 이를 한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의 신호로 보긴 아직 이르다지만, 벌써 논란은 시작됐다. 거품이냐 아니냐, 붕괴냐 아니냐. 이 땅에선 아직 갑론을박 중이지만, 이웃나라 저자의 결론은 사뭇 도발적이다. "아파트, 지금 팔아라. 부동산 버블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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