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시대의 개막(기로에 선 대처리즘: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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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처 그늘 벗어나 「홀로서기」/경제 회복·공공투자 확대가 과제
9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거둔 안정적 승리는 메이저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90년 11월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사임에 따라 실시된 보수당의 당수 경선에서 승리,47세의 젊은 나이로 20세기 영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될때만해도 그는 대처 전 총리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뚜렷한 한계를 안고 출발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본인이 장담한대로 「깨끗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대처리즘의 제약에서 벗어나 완전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지적이다.
메이저 총리는 수많은 악재를 안고 이번 선거전을 시작했다. 13년 보수당집권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변화욕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이후가 가장 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복지개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 또한 그 어느때보다 높았다는 지적이다. 보수당의 패배를 예고한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객관적 상황에 비추어 보수당의 재집권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으로 비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만큼 이번 총선에서 거둔 메이저 총리의 승리는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앞으로 메이저 총리가 풀어야 할 첫번째 과제는 경제회복이다. 지난해 영국경제는 마이너스 2%의 성장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 10%에 육박하고 있다.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그는 정권이 노동당으로 넘어갈 경우 이제 막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경제가 완전한 불황국면으로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보수당의 재집권만이 영국경제를 길고 긴 터널에서 구하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해왔다.
마지막 부동표가 보수당에 몰림으로써 메이저 총리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게된 중요한 요인 가운데는 바로 이 경제문제 해결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무시할 수 없다는게 일반적 분석이다.
경제회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열악한 의료서비스와 교육환경을 개선하는등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짐으로써 선거운동기간중 노동당이 국민여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만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메이저 총리로서는 공공지출의 최대한 억제를 기본정책 가운데 하나로 삼았던 대처리즘적 전통과 분명한 선을 긋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보수당의 4기 연속 집권은 영국의 정치판도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수당이 일본의 자민당이나 이탈리아의 기민당식으로 가는게 아니냐는 전망마저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양대정당 가운데 하나인 노동당이 지난 79년 이후 4연패를 기록함으로써 전통적 양당제의 기틀 자체가 위협받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당의 닐 키노크 당수는 당수로 선출된 지난 83년 이후 당의 체질개선에 온힘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노동당의 좌파적 이미지가 많이 탈색된 것도 사실이다. 명목상으로는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고 있다지만 보수당과 노동당이 실제 추구하는 정책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많은 영국사람들은 얘기하고 있다. 거의 집권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보수당에 패배한 이번 선거를 놓고 노동당내에서는 지나치게 중도쪽으로 기운 결과 당의 노선이 보수당과 별 차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비판론도 나오고 있다. 키노크 당수가 당권을 장악하고 난뒤 지난 87년에 이어 연거푸 두차례나 총선에서 패배함으로써 키노크 당수 개인에 대한 퇴진압력과 함께 당의 위상재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노동당내에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런던=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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