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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예술은 자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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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아마벨은 계속 논란에 휩싸였다. 즉각 폐기 처분되어야 할 비행기 엔진 터진 것 같은 30t짜리 강철 흉물(?)이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 미관을 훼손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근처를 지나다니는 시민들도 불만을 제기했다. 일부 전문가도 환경 조형물 자체가 공중을 위한 것이므로 시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며 철거에 찬성할 정도였다. 다른 전문가들은 아마벨의 상징성과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 일인 시위까지 벌이면서 철거에 극력 반대했다.

골머리를 앓은 포스코 측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번에는 작가가 강력히 반대했다. 그 결과 진퇴양난이 된 회사에서는 조형물 주위에 소나무를 둘러 심어 보행자들의 시선에서 기술적으로 아마벨을 가리고 있다. 얼마 전 개인 약속 때문에 가 본 현장에서는 조형물의 전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청계천 진입로에는 팝아트의 대가 클래스 올덴버그가 13억원을 받고 만든 높이 20m짜리 상징 조형물 '스프링(Spring)'이 우뚝 서 있다. 형형색색의 꽈배기로 입혀진 성탄절 트리 비슷한 이 작품은 아마벨 같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쉬운 일상적 이미지를 도입하고 미디어 친화적인 소재를 씀으로써 대중과의 교류를 넓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팝아트는 1990년대 국내 미술계에도 상륙했다. 최근에는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도 자주 열리고 있다. 마릴린 먼로같은 유명 인물이나 캠벨 통조림 같은 일반 상품들을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화면에 옮긴 팝아트의 대명사 앤디 워홀의 작품전도 최근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2007년 2월에는 한국적 팝아트를 내세우는 낸시 랭을 소재로 한 가전업체의 홍보물 '낸시 랭 실종 사건'이 포털 검색 순위 1위로 떠오른 적도 있다.

아마벨과 스프링은 현대 미술의 큰 흐름 두 가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아마벨은 보는 이를 충격에 빠뜨리며 곤혹스럽게 한다. 고전적 조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석굴암 본존불이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 익숙한 눈으로 볼 때 아마벨은 기괴하고 폐허 같은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각을 확장하면 그것은 강철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의 종말, 그리고 폐허로부터 다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할 수도 있다. 난해하다고 해서 반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스프링은 훨씬 접근하기 쉽다. 주위에 널려 있는 일상적 소재를 빌려옴으로써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팝아트가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해소한다는 명분 아래 자본의 논리에 부역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은 공적이라 할 만하다.

난삽한 것이든 쉬운 것이든 현대 예술은 정형화된 인식의 틀에 도전한다. '아름다움의 추구가 예술이다'라는 고전적 정의를 넘어 예술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시키려 하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상상력의 실험이며 자유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고전 예술을 비판적으로 승계한다. 그리고 자유 없이 성숙하고 풍요로운 삶도 없다. 세계의 수도 자리를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뉴욕이 차지한 것은 그 부와 함께 활짝 핀 예술 덕분이었다. 파리와 뉴욕은 자유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고즈넉한 과천 현대미술관에는 세계 현대 예술 사전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실린 백남준의 비디오 탑 '다다익선'이 자유를 꿈꾼다. 용산의 장대한 국립박물관에는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우리를 향해 영원의 미소를 짓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지만 자꾸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도 참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