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철한 9단 ● . 이성재 8단
40으로 끊은 이상 이후는 소위 '외길 수순'이다. 54로 두 눈을 내고 살기까지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외길이다. 결과는 어떤가. 백은 흑의 우변을 돌파했다고는 하지만 간신히 쌈지를 뜨고 살았다. 하변 쪽 백은 47의 한 방으로 기상이 꺾였다. 돌의 형태는 나무처럼 태양을 향해 머리를 내밀어야 하는데 그만 그늘 속에 갇히고 만 형상이다.
52 쪽의 백 두 점도 당장 흑을 제압할 수는 없는 모습이다. 반면 흑은 55로 꽉 이은 두터움이 사해를 압도한다. 이 두터움은 앞으로 만사를 순탄하게 만들어줄 든든한 '백'이 아닐 수 없다.
"(최철한 9단이) 슬럼프는 슬럼프인가 보네." 구경하던 프로기사가 혼잣말처럼 한마디 던진다. 슬럼프라. 슬럼프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슬처럼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이던 수에 대한 감각이 어느날 갑자기 실종되는 것일까. 성공과 실패조차 무덤덤해지고 현실보다는 환상이 머리를 지배하는 그런 것일까.
'폭삭 망했다'는 표현이 그리 과장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이창호 9단을 연파할 때 초반이 누구보다 견고하던 최철한 9단이었는데 요즘은 이처럼 초반에 크게 실패한 뒤 힘겨운 추격전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다시금 냉정하게 판을 살피면 흑도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당면 과제는 하변 백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인데 그 첫수는 어디가 최선일까.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