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미등록 물질 제품 수입금지' 중소기업 74% "생긴 줄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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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유럽연합(EU)이 새로 도입하는 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시행을 앞두고 수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제도가 시행되면 EU로 수출하는 화학물질에 관한 유해성 정보를 해당 관청에 등록하지 않으면 수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화학물질 자체뿐 아니라 완제품 내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유해성 정보도 모두 등록해야 한다. 따라서 화학산업뿐 아니라 제품 생산과정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전자.전기.자동차.기계.섬유 등 모든 산업에 걸쳐 영향을 미치게 된다.

REACH가 지금까지 환경규제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화학물질을 등록하지 않으면 EU로의 수출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른 국가 거래처도 끊길 수 있다"며 "소규모 업체는 수출을 포기하거나 폐업하는 곳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지난해 REACH 전담반을 꾸렸다. 모두 5명으로 구성된 전담반은 EU의 관련 법령을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1년여 준비한 결과 수출 제품 중 등록 대상 물질을 32개로 파악하고 등록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회사가 추산하는 등록 등 제반 비용은 30억~40억원.

이 회사 진형철 차장은 "화학물질 건당 등록비는 1억원부터 20억원까지 다양하다"며 "등록에 필요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기관이 국내에 없어 값비싼 외국 시험기관을 이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등 수출 주력 업체들이 대응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전자.정밀화학 업체 등도 대책을 마련 중이다.

발 빠른 대기업의 움직임에 비해 중소기업의 준비 정도는 열악하다. 정보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접착제.계면활성제공업협동조합 이영시 전무는 "법령이 방대한 데다 복잡하기도 해 구체적 내용을 알기 힘들다"며 "등록 비용도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 13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REACH 등 외국의 환경규제 내용을 모른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계는 EU로의 수출뿐 아니라 다른 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까지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 전무는 "EU에 직접 수출을 하지 않더라도 국내외 제조업체들이 EU 수출을 염두에 두고 등록하지 않은 제품의 반입을 꺼릴 수 있다"며 "내수에서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LG화학 관계자는 "등록하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등록을 한 글로벌 업체 제품으로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REACH에 대해 무역 전문가들은 "유럽에서는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등 외국 기업에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영.서경호 기자

◆REACH는=화학물질 생산기업들이 사용량과 유해성을 등록.평가.허가받도록 하는 제도다. EU에서 연간 1t 이상 사용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해 생산자가 위해성 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전체 화학물질 중 80%인 3만여 종의 화학물질이 이에 해당한다. 등록 대상 물질 중 연간 100t 이상 사용되는 물질은 추가로 평가 대상이다. 발암성.돌연변이성으로 분류되는 물질은 유통량과 관계없이 모두 허가 대상이다. 내년 6~11월에 사전 등록하고, 2008년 12월부터 2018년까지 화학물질별로 본등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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