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 전역 떠돌며 새 작품 구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장편『부초』등으로 70, 80년대의 감성을 휘어잡았던 작가 한수산씨(46)가 일시 귀국했다.
인기에 따른 주체할 수 없는 원고 청탁에 한씨는 70년대 말 제주도로, 작품 주제가 아니라 한 사소한 표현에 가해진 5공의 경악스런 고문으로 다시 88년8월 일본으로 부초같이 떠내려가야 했다.
『모국어와 모국의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적 변화에서 유리된다는 것은 작가로서는 치명적입니다.
위성 방송으로 뉴스도 보고, 일본에 오는 한국인도 만나보고, 또 한국속담 사전·한국 야생화 사진집을 머리맡에 두고 항상 뒤적거리며 우리의 현실, 우리의 감각을 잃지않으려 하나 뜻대로 안돼요. 우리 사람들과 부대끼며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동감이 있어야만 작품이 되는건데….』
때문에 빨리 돌아오고 싶어 내일 내일하면서도 자꾸 귀국이 늦어져 스스로도 안타까웠다고 한씨는 밝힌다. 한씨의 이번 일시귀국은 선집 출간 때문.
72년 단편「4월의 끝」이 당선, 문단에 나온 한씨는 그동안 총 32권 분량의 소설과 산문을 발표했다. 이중 중앙일보에 연재 중 81년5월 그에게 고문을 안겨주었던『욕망의 거리』를 비롯,『해빙기의 아침』『진흙과 갈대』등 장편 9권, 중·단편 2권, 산문 1권, 그리고 신작 장편 4권 등 총 16권이 작가에 의해 자선돼 중앙일보사에서 순차적으로 출간된다.
『이제까지의 문학 행위를 일단 매듭짓고 새롭게 작품 활동을 하고파서 이번 선집을 내려 합니다. 내 스스로 애정이 가는 작품, 내 작품 세계의 변화를 보이면서 독자들에게 다시 보이고 싶고 평가받고 싶은 작품들만 골랐습니다.』
선집을 펴내면서 한씨는 또 이런 저런 제약 때문에 충분치 못했던 작품들을 대폭 개작하게 된다. 개작하면서 한씨는 자료 취재와 표현에 좀더 철저치 못한점, 사건의 진행을 가로막는 축축 늘어진 문장들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밝힌다.
『일본에 있는 처음 2년간은 무언가를 잊으려 애썼어요. 소설도 잊고 폭력도 잊고…. 그러다보니 어느 한군데 우리와 연결 안된곳 없는 일본이 보이고 그 일본을 통한 한국이 보이더군요. 그러면서 앞으로 내 소설적 몫이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그소설을 위해 한 2년여 일본전역을 바삐 떠돌고 있지요.』
일본에서의 남은 작품 취재를 마치고 올 연말께 완전히 귀국하겠다는 한씨는 앞으로 자신의 작품세계가 변할것이라고 예고한다. 기존의 작품이 개인성에 바탕했던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역사성·사회성을 충분히 반영해 넣겠다는 것이다.
『해방둥이로서 피식민에 대한 콤플렉스도,「반일」이라 쓰여 있던 국교 교실에서 교육받은 세대로서의 반일 감정도 내겐 없었습니다. 이 텅빈 내 대일 감정을 바탕으로 같은 전후세대로서 일본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일본도 그게 아니라는 걸 이내 알았습니다. 반드시 청산해야될 문제들이 일본 곳곳에 배어있습니다. 양국 국민 정서가 전혀 치유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그 뿌리를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한씨는 우리 나라보다 일본에 더 많이 널려 있는 한일 관계 자료를 철저히 수집, 귀국 후 그 자료에 입각해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로 능력껏 한일 관계를 짚고 넘어가겠다고 밝힌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