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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어두운 면 노출/장영자씨 천억대 갑부변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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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가압류 부동산 그대로 남아 “돈방석”/돈흐름 왜곡시키는 경제모순 재현
「출옥」이 현세에 얽힌 모든 이해관계와 복잡한 사연을 다 털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31일 수감 9년10개월만에 청주 교도소의 문을 나선 장영자 여인(47)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벌써 10년전의 일이라 이제는 일반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82년 5월 세상을 온통 뒤집어놓았던 희대의 어음 사기사건인 이·장사건의 주역이었던 장여인의 출감은 아직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우선 이·장부부가 10년 가까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들 명의의 부동산 값이 치솟아 이들이 다시 1천억원대의 갑부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여실히 드러내보여준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는 치부의 과정이지만 한 나라의 신용질서 전체를 뒤흔든 일을 벌이것도 다시 갑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동산만 붙들고 있으면 산다」는 반사회적인 경제논리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국세청은 이들 부부에게 3백20억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부동산등 재산을 가압류했으나 장여인은 이에 불복,소송을 냈고 따라서 가압류된 부동산은 아무도 손을 못댄채 이·장 부부의 이름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12월30일 대법원에서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중 2백95억원은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나자 결국 값만 오른 상태로 고스란히 이들 부부의 손에 남게 된 것이다. 부동산 값에 비하면 이제 이들이 갚아야 하는 2백20억원의 은행대출금과 25억원의 세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법망의 정비보다도 때로는 경제제도의 정비가 훨씬 더 절실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장사건은 또 당시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위한 단자사 설립 러시등 많은 경제제도의 변화를 몰고 왔고 그 후유증으로 정부는 최근 몇년 사이 다시 기존 단자사의 일부를 은행으로 전환하고 있는등 아직도 그 마무리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다.
검찰의 발표에 의해 어음사기액수가 자그마치 6천4백억원으로 밝혀졌던 이·장사건은 제도금융이 제 구실을 못하고 사채시장등 지하경제가 활개를 치던 당시의 경제상황에서 권력층의 측근이라는 신분을 이용(전 전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의 삼촌인 이규광씨가 장여인의 형부),자금이 어려운 기업에 거액의 은행 대출을 알선해주고 증시 등에서 자금을 굴리다 증시가 어려워지자 담보로 잡았던 백지어음을 돌리는 바람에 공영토건·일신제강등 굵직한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은행장등 32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실명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시행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자금이탈이나 부동산 값의 상승등 부작용만 빚어 결국 이·장 부부는 자신들이 벌인 일의 후유증으로 자신들의 부동산값을 더 올려놓는 결과를 만든 셈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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