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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저가공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나라는 문물예약이 흥행한지 이미 오래며,장사배가 끊임없이 출입해 진보가 날로 들어오니,실로 중국에 의지할 것이 없다.』(『고려사』 문종 12년 8월조)
한중 두나라간의 민간무역이 본격화한 것은 고려때였다. 고려 현종때부터 충렬왕 연간(1012∼1278년)에 내항한 송나라 상인의 수는 총 1백20회 5천명을 넘었다.
송나라 상인들은 비단·약재·서적 등의 자국산 상품과 중계무역의 성격을 띤 아랍 및 서남아시아산 물건들을 가져다 팔면서 금·은·인삼·황칠·붓·송연묵·왕골자리 등 갖가지 물품들을 고려에서 가져갔다. 송상들의 수입이 훨씬 많아 두나라간의 민간교역은 고려가 막대한 흑자였다.
급기야 북송의 소동파는 『고려의 조공은 해가 많은 반면 추호의 이도 없다』면서 중국의 서적을 고려에 파는것까지도 반대했다. 오죽했으면 조공사신의 왕래때 수행원들이 인삼등을 지니고가 파는데서 얻은 무역이득까지 배격하려는 주장이 나왔겠는가.
그러나 오늘의 한중무역실태는 고려때와는 정반대다. 최근에는 중국산 의류가 저가대공세를 펼쳐 국내업체의 도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올 2월말 현재 전체 섬유류수입은 지난해 동기비 4.1%가 감소한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값싼 의류수입은 세배나 늘어난 1백60억원어치가 들어왔다. 국내 의류업체는 현재 전국민이 2년동안 입고도 남을 1억벌 이상의 재고를 쌓아 놓고 있고 지난 한햇동안 1백여개 업체가 파산한 상태다.
이미 면장갑과 나무젓가락은 중국산의 시장점유율이 각각 91%,85%를 기록하면서 국내업체들을 무참히 도산시켜 버리고 말았다.
켤레당 수입원가 1백15원에 시중 판매가 1백70원인 중국산 면장갑이 국산 최저판매가 2백50원을 완전히 물리쳐 버린것이다.
저가공세에 밀려 「북방무역적자」라는 잿빛 하늘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오늘이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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