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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맞고도 위기감이 없다(성병욱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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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집권 민자당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총선거에서 과반수 의석확보에 실패한 직후 호들갑을 떨던 인책론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이젠 대통령후보 선출문제만 요란스럽다.
볼썽사납던 책임떠넘기기 공방이 오래 가도 좋을게 없지만,이렇게 너무 맺고 끊는 데가 없는 것도 딱한 일이다. 총선결과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이번엔 단단히 책임지는 조치가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결과는 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겸했던 사무총장 경질 하나로 문책조치는 그만이었다.
그밖에 정책책임자가 바뀌고 일부 개각이 있긴 했지만 총선패배에 대한 인책과는 무관하다. 안기부장 경질도 선거결과 책임보다는 안기부원의 흑색선전 개입에 대한 문책으로 보인다.
○국민의 분명한 경고
하긴 총선패배의 총체적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는데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겠느냐는 논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임기제로 선출된 대통령의 직접 인책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아래 책임질 사람을 두는게 아닌가.
그러니 별 문책조치가 없는 것은 집권층이 이번 총선결과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총선결과를 과연 그렇게 안이하게 받아들여서 좋은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그렇지 않다. 총선을 통해 국민은 집권세력에 분명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그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심기일전,총력을 기울여 대응하면 전환의 기회가 올수도 있으나 편하게 생각하고 쉽게 대처하다가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집권 여당이 야당에 비해 총득표율에서 1.1% 뒤진 78년의 10대총선 결과는 당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분명한 국민의 경고였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그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한 안이한 자만심이 연속적인 실착으로 이어져 결국 10·26까지 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에 비해 민자당정권의 처지는 더 나을 것이 없다. 우선 시간이 별로 없다. 노대통령의 임기가 채 11개월도 못남았고 8개월 후에는 후임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대권싸움에 힘 낭비
민자당내에는 대통령선거에서 설마 지기야 하겠느냐는 턱없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나,총선결과를 보면 그것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인지는 분명하다.
지난 4년간 6공정부의 실적을 봐도 표를 얻을 일이 별로 없다.
흑자였던 국제수지가 적자로 반전했고 인플레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일하던 분위기가 풀어져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기까지 했으나 부녀자들의 밤길 다니기는 더 어렵다. 공직사회의 부패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인사운용에 있어 특정지역 우대로 반TK정서가 상당히 번져있다.
6공정부가 가장 내세울수 있는 치적인 민주화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기관의 정치인 미행,전화도청,불출마 압력,흑색선전 가담 등 최근의 거친 행동으로 적지 않은 훼손을 입었다. 역사적으로 평가될만한 북방정책도 최근 북한의 핵무기 개발공방으로 그 빛이 상당히 바랬다.
민자당쪽도 매력이 없기는 매 한가지다. 3당통합으로 거대여당이 되었지만 그 힘을 내부에 쏟느라 정국안정을 주도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총선패배인데 그 상황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8개월후의 대통령선거를 낙관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철저한 반성과 변신이 없는 안이한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집권세력이 국민의 신임을 어느정도나마 회복하려면 발상과 의지와 행태의 대변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집권당이 처음 시도하는 대통령후보 경선은 잘만하면 여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멋진 경쟁으로 축제속에서 후보가 결정된다면 국민에게 신선감을 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후보들간의 페어플레이 결과에 대한 승복과 승자에게 힘을 모아 주는 약속의 분위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분풍토로 보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총재로서 노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일부에선 대통령의 엄정중립을 요구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선의 틀과 분위기는 확실히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당총재가 대통령후보 결정같은 중요 정치문제에 의사표시없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가능하지도,바람직하지도 않다. 선량한 조정자역할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반성없인 대권 무산
또한 정부쪽에도 임기말 레임덕현상에 기죽지 말고 행정력을 철저히 장악해 그동아 느슨했다는 평가를 벗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환기에 심화될 수 밖에 없는 부패·무책임·무사안일·행정마비현상 등으로 국가의 기본이 흔들리고,그것은 곧 대통령선거로 직결되고 말 것이다.
집권세력은 일대 위기의식을 갖고 변신해야 한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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