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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정형 성 탈피|개성시대|일 건축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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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 대도시의 건축물들이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 90년대 들어「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의 건축 양식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날로 정형화 돼 가는 도시 속에서 인간과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건물의 소유주들인 일본 기업들이 경영 전략 및 투자가치를 건물에 반영하려는 노력과 맞아 떨어져 붐을 형성하고 있다.
80년대 일본에서는 아이덴티티를 주장하고 개성을 정확히 표현하려는 노력이 상당히 존중돼 왔다. 사회가 풍부해지고 개인 의사가 존중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개성의 주장은 급속히 사회의 주된 흐름이 됐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많은 일본 기업들은 외국과의 무역 마찰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 수요를 확대하고 기업의 활동을 국제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축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윤으로 투자는 더욱 가속화되면서 평론가들이 건축의「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부르는 현상을 창출하게 됐다.
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은 소위 모더니즘이 그 한계에 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건축가들은 시대의 변화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창조적인 활동을 벌이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어떠한 사상을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어떠한 종류의 운동을 벌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치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 반응해 활동했다. 사회적인 흐름을 발견해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언론과 역사가들이 이러한 현상을 붐으로 조성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급속히 확산됐다. 모든 건축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복종하도록 무형의 압력을 받았다.
일본의 도시 건축물들은 인구의 도시 집중화와 천문학적인 땅 값으로 인해 기형적인 형태를 띠어 왔다. 건축물들은 너무 과장되고 거대해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일본처럼 소비가 왕성한 나라는 없다. 만들어지는 즉시 소비돼 버릴 정도로 소비 패턴이 빨라 패션은 몇 주에서 길어야 세 달 정도 지속될 뿐이며 건축물도 길어야 10년이 고작이다. 예를 들어 일본 건축 협회의 최고상을 받은 건물「비잔 흘」은 땅 주인이 바뀜에 따라 지어진지 몇 년만에 헐렸다. 또 다른 대형 건축물 하나는 2년만에 헐리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필요에 대응하려는 일본인들의 속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급속한 순환 속에서 기술·역사·대중성을 반영하는 건축물의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양식은 80년대의 주요한 흐름을 창조해 냈다.
90년대 들어 거품 경제가 꺼져 가고 있는 일본에서 민간 분야의 건축은 80년대에 비해 축소지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건물들은 여전히 풍요로운 도시 환경을 반영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추기 위해 대형화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공공 건물의 대형화 추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말기에 찾아온 것으로 90년대 건축 양식을 규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식은 기능적인 면만이 강조되던 과거의 관념에서 벗어나 공공의 이익과 사회성을 반영, 보다 안락하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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