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짐 되느니 차라리…”/외로운 노인들 잇단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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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들 넷 한달씩 봉양비관 76세노파/6남매두고 노인정 생활 68세노인/메말라가는 가족관계에 큰 충격
핵가족화에 따라 노부모봉양 기피풍조가 사회문제로 되고 있는 가운데 27일 서울에서는 자녀들로부터 외면당한 노인 2명이 잇따라 자살,큰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많은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노부모와 함께 살기를 꺼렸던 것으로 밝혀져 노인들의 자살은 가족윤리마저 파괴되어 가는 메마른 세태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교훈이 되고 있다.
27일 낮 12시30분쯤 서울 둔촌2동 보훈병원 뒷산에서 김정자씨(76·여·서울 둔촌2동)가 2m높이의 나뭇가지에 끈으로 목매 자살했다.
김씨는 아들 넷을 두고 15년전 남편과 사별,장남(47)집에서 기거해왔으나 4형제가 남편의 제사날인 1월5일 가족회의를 열고 가정형편을 이유로 한두달씩 돌아가며 모시기로 결정하자 『자식들이 나를 부담스러워 한다』며 비관해왔다는 것이다.
김씨는 가족회의 결정에 따라 1월6일부터 한달간격으로 안양·부천에 살고 있는 셋째·둘째아들 집으로 옮겨다니며 생활해오다 협심증등 노인병에 걸려 지난달 24일부터 큰아들집에 기거하며 치료를 받아왔었다.
김씨의 4형제는 장남이 18평짜리 연립주택에서 살고 있는등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으로 알려졌으나 주변에서는 형제들이 조금씩 힘을 합쳐 노모를 잘 모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또 27일 오전 8시10분쯤 서울 고척1동 동양공전 뒷산에서 김춘식씨(68·무직)가 4남2녀의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것을 비관,2m높이의 소나무 가지에 목매 자살했다.
김씨는 10년전부터 부인·미혼인 막내아들(28·노동)·큰손녀(16·K중 3년)와 함께 동네 노인정에서 청소해주는 대가로 방 한칸을 얻어 거주해왔으며 부인 박금순씨(63)가 인근 공장에서 부정기적으로 식당일을 도와주고 받는 월3만∼4만원의 수입으로 어렵게 생활해왔다.
김씨는 미장공으로 일하며 자녀들을 국민학교 밖에 졸업시키지 못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해 자식들에게 전혀 불평없이 지내왔으며 10년전까지 인근 방 2칸에서 셋방살이하다 막내딸 결혼때 혼수비용을 마련해 주고 부부가 함께 노인정으로 옮겨 살아왔다.
김씨의 장남(41)은 『부천에서 노동을 해 월수입 1백만원쯤 되지만 생활이 나아지면 부모를 모시려 했다』고 말했다.
또 차남(38)은 부천에서 승용차 운전사로 일하고 있으며 3,4남은 각각 충남·서울에서 노동일을 하고 있다.
부인 박씨는 남편 김씨가 4년전부터 계속 자신의 처지를 비관,『이렇게 살아서 뭘 하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해 자살할까 두려워 계속 감시해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녀들은 『월5만원씩 생활비를 도와드렸는데 왜 자살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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