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동기 밝혀 낼 지에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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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4대 총 선이 끝남에 따라 안기부 직원들의 흑색 선전물 살포·한맥 청년회의 불법 선거 운동 의혹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안기부 사건의 경우 검찰은 21일 안기부 직원 4명을 현행범으로 구속했으면서도 배후·유인물 작성·배포 경위 등에 대해서는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검찰은 이러한 수사 지연의 이유로 주범 격인『한기용씨가 평소 신세를 많이진 친구의 부탁에 따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유인물을 돌렸다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다른 진술은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은 『한씨 이외의 3명은 같은 팀 소속이어서 안기부의 엄격한 상명하복의 특수성상 한씨가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도구」노릇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전모를 모를 수도 있으며 이들도 한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또 한씨 등 이 붙잡힌 직후 민주당 지구당사에서 쓴 자술서 중「흑색 유인물이 든 대 봉투를 전날 저녁 9시쯤 안기부 모 직원으로부터 건네 받았다」는 부분이 배후를 밝히기 위한 유일한 물증이나 이들은 검찰에서『당시 민주 당원들의 폭행에 의한 거짓 자백』이라고 번복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의 배후 흔적을 추궁할 만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검찰로서는 오로지 구속된 한씨 등의「입」을 통해 수사 진전의 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는 수사 기술상의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들의 심경 변화를 최대한 유도하고 설령 흑색 선전물 살포 혐의만으로 기소한 이후에도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며 배후 등을 추궁하는 장기 수사 체제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수사 기술적인 어려움보다「수사의지」가 사건 전모를 밝히는 관건이라고 검찰 주변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총선 전에 수사에 나설 경우 수사 진행 과정의 보도가 여당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고려 때문에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만큼 앞으로 얼마나 철저치 진상을 캐낼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또한 한씨 등이 붙잡히자마자 안기부가『이 사건은 안기부와는 무관한 개인 동기에 의한 범행』이라고 서둘러 입장을 밝힌 것도 자충 수라는 지적이다.
만일 이번 사건을 축소 지향적·소극적으로 마무리하는데 급급할 경우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구속된 4 -명이 언제 어디서 양심 선언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검찰은 공신력 회복뿐만 아니라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범행동기·배후 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김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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