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기고

다시 생각해야 할 대북 식량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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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이 1차 7개년 계획을 시작한 직후인 1962년 김일성은 북한 주민에게 "이 계획이 완료되면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그 가운데 어느 하나 이루어지기는커녕 수백만 명의 주민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의 주민이 먹을 것을 찾아 만주 벌판을 전전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북한 주민이 기아선상을 헤매는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과 남한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다.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지도, 그 답을 구하지도 않은 채 우리는 동족인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당위적.인도적 명분에서 무조건적 식량 지원을 꾸준히 해 왔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식량 지원이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는커녕 농업을 오히려 망친다는 사실이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수백만 명이 희생된 북한의 기아(飢餓) 참사의 근본적 원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북한의 독재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된 제도와 정책이다.

기아는 정치적인 것이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기에 인민의 뜻과는 다르게 지도자가 자신의 이미지 구축이나 무기에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평양의 각종 기념관 건축과 핵무기 개발이 인민을 기아에 빠뜨렸다.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면 인민이 기아에 대해 투쟁하므로 기아 문제가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해결책이 마련되게 마련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70년대 중반 도입되었던 이른바 '주체농법'이라는 북한식 농정의 실패와 사회주의적 집단영농으로 인한 농업 생산성의 저하 때문으로 80년대 시작되었다. 최근 홍수와 가뭄으로 식량난이 더 악화되었을 수는 있으나 근본적 원인은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든 농민이 생산을 증대시키려면 동기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사회주의경제가 이를 부인하는 데서 문제가 초래되었다.

북한은 50여 년 동안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의한 '계획가격제'를 유지하여 왔으나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협동농장에 자율권을 주는 분권화 조치를 단행하고, 개인 밭 경작 규모를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단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즉 시장경제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퍼주기식 식량 원조가 장기적으로 북한 농업을 망친다는 데 있다.

자연재해나 전쟁 등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한이든 국제기구든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하는 것은 북한을 더욱 원조 의존적으로 만든다. 이는 식량 원조가 이루어지면 식량 가격이 떨어지고 가격 하락은 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져 식량 부족이 더욱 확대되기 때문이다. 식량 지원이 예상되면 북한 당국도 식량 증산 노력을 게을리할 것이다. 북한 식량 부족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북한 주민에게 소유권을 보장하고 자유롭게 물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도입이다.

80년 대 초반까지 식량이 부족해 인민이 기아에 헤매다 벗어난 중국의 경험은 북한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중국인이 기아에 헤맨 것은 마오쩌둥의 공산혁명으로 전통적 영세농이 집단농장으로 강제로 편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인민의 배고픔에 평소 가슴아파 하던 덩샤오핑이 하이에크 교수를 만나 중국민이 기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방안을 물었을 때 하이에크 교수의 처방은 농지의 사유화와 경작물의 사유화였다. 하이에크 교수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시행했더니 3년 만에 식량 부족과 기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기아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사유재산 제도다. 북한이 기아로부터 벗어나는 길, 아니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식량 지원을 받는 것보다 사유재산 제도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는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임을 확실히 인지하여 우리의 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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