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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과는 백주 … 영문과는 위스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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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천약불애주 주성부재천). 하늘이 술을 즐기지 않는다면 하늘에 어찌 주성이 있겠는가."

12일 오후 6시쯤 서울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내 한 강의실에 애주가로 알려진 서정돈 총장과 김준영 부총장 등 교수 30여 명이 모여 앉았다. 한문학과 송재소 교수는 교수들에게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시구를 읊으며 '중국의 술 문화'를 주제로 특강을 시작했다.

송 교수 옆 탁자에는 수정방(水井坊).여아홍(女兒紅).주귀(酒鬼) 등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중국의 명주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중국술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송 교수의 중국술 강의는 술 빚는 방식에서 구분법, 마시는 법까지 이어졌다.

"2003년에 중국 당국이 5성급 호텔 50곳을 조사했더니 고급 백주는 진짜가 47%, 고급 양주는 진짜가 28%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짜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마셔봐야 알 수 있어요."

송 교수의 특강은 대학로의 한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날 소개된 술 8병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끝났다.

성균관대 문과대 교수들 사이에서 이날과 같은 술 공부 모임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4월. 김동순 문과대학장이 부임하면서 학문 간 단절의 벽을 깨고 교수들 사이에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친숙한 소재인 '술'을 카드로 꺼내든 게 시작이었다. 그냥 먹고 마시는 일회성 모임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 들어가 있는 각국의 술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학기에 한 번씩 모임을 정례화했다.

지난해 4월엔 프랑스어문과에서 주관해 와인을 주제로 모임을 했고 12월엔 영문과 김동욱 교수가 강사로 나서 위스키 특강을 했다. 김동순 학장은 15일 "학문 간 벽을 허물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마련한 자리인데 어느새 학교 안에 소문이 나서 이번엔 총장까지 모시고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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