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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와인 위해 1년에 딱 1500상자 만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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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우리 할란 이스테이트에서 만든 최상급 와인을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만 수천 명이지요. 그렇지만 1년에 1500상자라는 생산량은 유지할 생각입니다.”
컬트 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나파 밸리의 소규모 포도농장에서 생산되는 최상급 와인을 이르는 말이다. 프랑스 보르도의 1등급 와인 못지않은 품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으며, ‘부티크 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컬트 와인의 대표 격인 할란 이스테이트의 최고경영자 돈 위버가 한국을 방문했다.

“생산량이 적다 보니, 한국에 할란을 많이 팔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할란은 한국에는 상징적인 의미로 60병만 판매했으니까요. 할란이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캘리포니아 와인 중에 최상급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홍보하고 싶어 찾았지요.”
할란을 비롯한 컬트 와인은 소매로는 팔리지 않는다. 우편 예약, 경매, 레스토랑 등을 통해 팔린다. 이렇게 희귀하다 보니 판매가가 450달러인 할란 와인이 경매에서는 3000달러로 가격이 훌쩍 뛴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고 싶어 안달이다. 할란 와인을 우편 배달로 받으려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다. 그러나 기존 회원이 탈퇴하거나 사망해 자연 결원(缺員)이 생기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할란의 메일링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10~20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혹자들은 할란 같은 컬트 와인은 “마케팅의 승리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수량을 최소화해 희귀성 때문에 대접받는 와인이 됐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위버는 “품질을 위해 수량을 최소로만 가지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해야 하고, 뿌린 만큼 벌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케팅뿐 아니라 ‘특1등급’이라고 자부하는 품질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할란이 있다는 설명이다.

품질을 지키려는 할란 이스테이트의 생산방식은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할란 이스테이트라는 농장은 1984년 만들어졌지만, 첫 번째 와인은 90년에나 나왔다. 포도나무에서 쓸 만한 포도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6년 정도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90년 빈티지의 할란 와인을 96년까지 팔지 않고 와인 저장고에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6년은 기다렸다 마셔야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려 12년의 세월을 견뎌낸 할란이 96년 시장에 나오자마자 와인업계의 스타가 됐음은 물론이다.

할란의 역사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역사와도 맞물린다. 와이너리 경영자로 나파 밸리의 성장 과정을 보아온 위버는 “80년대 활황기였던 미국 경제 덕분에 이 지역에 자본이 유입됐고, 필록세라라는 포도나무 흑사병에 걸린 나무를 모조리 교체하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부동산ㆍ증권ㆍ실리콘 밸리 등지에서 돈을 번 사람들이 와이너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좋은 나무로 교체하는 장기 투자까지 했다는 것. 여기에 90년대 초반 보르도 지방의 작황이 좋지 않아 91~93년 빈티지의 품질이 떨어진 상황도 한몫했다.

반면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 기간 안정적인 품질의 와인을 생산해냈다. 또 로버트 파커 주니어라는 걸출한 와인평론가가 세계 무대에서 힘을 얻어가는 시기와도 맞물렸다는 것. 파커는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을 일컬어 “심원한 깊이가 있고 스케일이 크다”고 표현했으며, 파커의 후광 덕에 다른 애호가들도 컬트 와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현재 할란은 스칸디나비아를 비롯, 러시아ㆍ두바이ㆍ중국ㆍ일본 등 35개국에 팔려나간다.
“와이너리 앞마당에서만 팔아도 없어서 못 팔지만, 새 시장을 개척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할란의 철학 때문이다. 또 한번 올라간 할란의 이름값을 유지하려면 이처럼 전 세계 고객과 소통하고, 자신들의 와인을 홍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와인계의 스타가 된 할란은 아직 수익성 있는 사업은 아니다. 이에 대해 위버는 “소유주 할란은 자녀들에게 ‘라이프 레슨’ 같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봄에 심고, 가을에 경작하는 농부의 모습을 보이면서 충만한 삶,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 한다”고 말했다. 돈이 아닌 그보다 더 값진 교훈을 와이너리를 통해 전수하려는 것이 할란의 생각이라는 것. 그러니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최상급 품질에만 신경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여러 와이너리가 2대ㆍ3대 등 훗날을 걱정합니다. 지금은 돈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돈을 오히려 투자해 포도주 생산에 매달리는 1세들이 있지만, 그들의 자녀가 꼭 와이너리를 이어받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그렇게 되면 그 와인은 사라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한편 할란을 포함한 컬트 와인 생산자들은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근면함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파 밸리 리저브(The Napa Valley Reserve)’라는 클럽을 만들었다. 프라이빗 클럽이라 가입은 어렵지만, 회원이 된 사람은 포도 가지치기와 수확, 와인 양조에 참여할 수 있다. 자기가 만든 와인은 선물용으로 가질 수도 있다.

위버는 “와인을 둘러싼 삶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그 문화가 얼마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 할란을 만들고 있습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덧붙여 “한국 와인 애호가들의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열정도 북돋아주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홍수현 기자


할란 이스테이트
(Harlan Estate)

INTERVIEW 캘리포니아 컬트 와인 ‘할란’의 CEO 돈 위버

“할란 이스테이트는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깊은 맛의 레드 와인 중 하나다.”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 주니어가 할란을 극찬하며 묘사한 말이다. 파커는 이 와인에 100점을 줬다.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는 99점을 매겼다.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 최고인 프랑스의 보르도 1등급 와인과 맞먹는 품질을 자랑한 할란 이스테이트.
할란은 성공한 부동산업자인 윌리엄 할란(67)이 1984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매년 1500상자라는 한정 수량의 포도주만 생산해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애달게 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유명 와인 메이커 밥 레비가 17년째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뛰어난 전략가인 돈 위버가 경영을 맡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할란은 판매가의 10배 되는 가격에 경매에 나오기도 한다. 우편 판매, 레스토랑 판매 등으로만 이뤄지는 방식 때문에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이들은 경매에서밖에는 할란을 손에 쥘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일링 리스트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

할란의 생산 방식은 완벽을 추구하기로 유명하다. 단위 면적당 포도 소출을 낮게 제한하는 것은 물론 포도를 딸 때도 일일이 낱알을 선별해 수확한다. 그래서 얻은 포도 중 절반 정도인 최상급 포도만으로 할란을 만든다. 40% 정도는 세컨드 와인인 메이든을 만든다. 나머지 10%는 다른 양조장에 벌크로 판다. 술을 담는 오크통, 코르크 마개까지 장인 정신을 발휘해 최상품만 쓰고 정성을 기울인다. 와인이 빚어졌을 때도 최고의 빈티지가 되기 전에는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의 명성과 품질만 생각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또 할란은 ‘땅의 특성을 구현하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와인 양조에 최적이라는 비탈진 언덕은 소유주인 윌리엄 할란이 20년간 샌프란시스코 인근 나파 밸리를 뒤져 찾아낸 땅이다. 다단계로 높낮이가 있어 고루 햇빛을 받는 240에이커(29만여 평)의 땅이 할란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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