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죽은 나무는 생태계의 자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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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무의 죽음
차윤정 글·사진, 웅진지식하우스, 268쪽, 1만5000원

자동차 바퀴에 치여 죽은 도둑고양이부터 배를 뒤집고 누워있는 파리까지, 모든 죽은 것은 공포의 대상이다. 비록 이들이 산 사람에게서 뺏어갈 게 하나도 없다 해도…. 죽은 나무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빛깔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고사목은 행여 귀신이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로 두려움을 자극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죽은 나무는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생태계의 어머니란다. 숲 학자인 지은이는 새.곤충.버섯.이끼 등 죽은 나무에 기대어 생존하는 숲의 생명체들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죽은 나무라 하면 으레 벼락맞아 죽은 나무, 재선충병에 걸려 붉게 말라죽은 소나무 군락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사고로 죽은 사람보다는 수명대로 살다 떠나는 이가 많듯, 나무도 수백 년 세월을 거쳐가며 서서히 죽음을 접한다. 푸른 새싹을 더 이상 내밀지 못할 때, 나무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딱따구리 등 나무에 구멍을 내 둥지를 만드는 조류, 나무 겉 껍질을 뜯어먹고 사는 딱정벌레, 상처 난 부위에서 피어오르는 버섯과 고사리 등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죽은 나무에 살림을 차린다. 작은 생물들의 등쌀에 쓰러져버린 나무에는 박쥐.너구리.뱀.족제비 등의 동물들이 몸을 숨기기 딱 좋다. 땅과 맞닿는 음습한 부위에는 지네.쥐며느리가 거처를 마련하고, 하늘과 맞닿은 윗부분엔 초록 이끼가 뿌리 내린다. 물을 잔뜩 머금은 그 이끼 속에 곤충들은 알을 낳는다. 혹여 물 위로 쓰러진 죽은 나무는 물속 생물의 삶에도 긴요하게 쓰인다. 계곡을 가로막은 나무는 물살을 느리게 해 물고기.개구리 등의 은신처가 되어주고, 물속 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각종 곰팡균이 달려들면 양분이 풍부한 흙으로 바스라져 또 다른 나무가 자라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주변 숲에서 이런 풍경을 모조리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공의 힘에 밀려 오래된 숲이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에 얹혀 살던 수많은 생물들도 자연히 멸종되거나 희귀종이 되어버렸단다.

살아서 수백 년, 죽어서 수백 년 생명을 살리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하염없이 자세를 낮춰야하지 않을까. 상생의 단순한 식물도감과 달리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서두에서 고사목에 대한 여러 외국 서적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서적 목록이나 사진 촬영장소 등의 정보가 빠져 아쉽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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