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불황이 오히려 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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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술작품과 불황. 참으로 희한한 얘기로 들린다. 미술계가 불황이란다. 각 신문에서는 화랑가가 불황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불황이 있기 전의 호황도 잘 모르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도대체 불황 이전의 호황은 어떠했었는가, 얼마만큼의 작가와 화랑이 재미를 보았었는가.
사실 그동안 우리 미술품 값은 너무나 비쌌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림 한 점이 웬만한 집 한채 값과 비슷했다. 보통시민들에겐 그림이 그야말로「그림의 떡」이었다. 특히 최근 몇년 사이에는 너무나 뛰었다. 몇십%가 뛰는 것이 아니라, 아예 5배·10배, 심지어 20∼30배까지 뛰었다.
1970년께의 박수근 유화 한점은 2만원(2호)이었다. 당시 대졸 회사원의 초봉과 비슷했다. 그것이 1985년에는 호당 1천만원선을 넘었다. 또 다시 5년 뒤에는 5천만원에서 1억원 이상으로 뛰었다. 어떻게 손바닥만한 크기의 1호 가격이 1억5천만원까지 호가할 수 있었는가.
박수근은 특별한 경우일지 모른다. 그러나 폭등하는 그림 값에 생존작가까지도 너도나도 합세했다.
그런 끝에 이제는 또 불황이란다. 어떻게 보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번쯤은 정지 작업을 필요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투기꾼의 발길을 멀게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또한 대중적 검증의 기회는 고사하고 미술사적 평가 방식과 무관했던 가격 상승의 경쟁이 어느 정도 누그러질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따라서 화랑가의 불황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부정적이지만도 않다. 어차피 호황을 누린 작가, 즉 팔리는 작가는 전체 미술인의 10%도 안되는 극소수였다. 미술사적 평가와 무관한 소위 인기 작가의 가격 폭등은 이제 냉정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불황이라고 한숨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면서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젊은 작가는 너무나 많다. 예술적 안목보다는 상업적 잣대에 의해 형성되는 일부 인기 작가 무리는 이제 정리되어야 한다.
재충전의 기회다. 그동안 화랑 혹은 작가간의 과당경쟁, 저질 작품의 양산, 유통 과정의 무질서, 그리고 구입 작품의 반환 사태 등 화랑가의 침체 원인을 심각하게 따져보고 개선시켜야한다.
불황이라고 아우성만 치지 말자. 호황이었을 때 무엇을 했는가, 또 호황이었다 한들 그 덕을 누린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올바른 미술 문화의 정착에 얼마만큼의 기여도가 있었는가.
그림 값이 폭등하면 할수록 대중은 미술과 격리되곤 했다. 오히려 반감만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그림 값이 미술계 뉴스를 크게 장식하는 한 우리의 기분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불황 이전에도 미술잡지의 발행 부수나 미술도서의 판매숫자는 역시 바닥에서 맴돌고 있었다.
우리의 미술계는 참으로 열악하다. 그런데 소수의「미술계 식구들」에 의해 호황이니, 불황이니 하는 우리네의 처지가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윤범모씨<우리미술문화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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