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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사이버 땅 장사 … 서울 땅도 곧 분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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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구전 설화 속의 인물 '봉이 김선달'. 요즘 인터넷 업계에선 김선달의 번뜩이는 기지 같은 게 '블루오션'(경쟁자 없는 영역)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다. 두둑한 배짱과 무한한 상상력이 새로운 비즈니스 세상을 열기 때문이다. 봉이 김선달식 성공 스토리가 미국에서 나왔다.

전세계 네티즌에게 사이버 공간의 땅을 파는 벤처기업 '린든 랩'. 이 회사가 가상 토지를 파는 사이트는 '세컨드 라이프'(또 다른 삶). IBM 등 세계적인 기업이 이곳에 전시관을 꾸미고 힐러리 클린턴 등 주요 인사들은 유세장으로 활용한다. 삼성전자도 12일 일본 소프트뱅크와 함께 '소프트뱅크×삼성'이란 가상전시관을 오픈했다.

세컨드 라이프의 성공사례를 엿보기 위해 2일 기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샌섬가의 린든 랩 본사를 찾았다. 창업자인 필립 로즈데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이 회사를 이끄는 윤진수(사진) 국제.법률담당 부사장이 반겼다. 그에게 세컨드 라이프의 성공 요인을 묻자 "네티즌에게 스스로 창조적 세상을 만들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린든 랩은 단지 플랫폼(공간)만 준다. 특정 가상 토지를 팔고, 다양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제작도구(3차원 그래픽 툴)를 서비스하는 게 전부다. 그 공간의 집이나 자동차.레저시설 등은 회원들이 만들어 팔고 산다. 매매되는 아이템은 모두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로 생산된다.

세컨드 라이프는 서비스 3년 만인 이달 초 회원이 500만 명(100여 개국)을 넘었다. 이들이 쓰는 땅이 7300여만 평(여의도의 80배)에 달한다. 린든 랩은 가상의 땅 1에이커(약 1200평)를 129달러 정도에 판다. 이들 소유자에게 관리비로 월 평균 25달러(최저 9.95달러)를 별도로 받는다. 현실의 돈(달러)과 같은 성격의 가상 화폐(린든 달러)도 유통된다. 린든 달러는 실제 화폐와 바꿀 수도 있다. 윤 부사장은 "요즘엔 1달러에 275 린든 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이곳에서 하루 소비되는 돈이 150만 달러, 장사를 하는 기업이 1만2000여 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린든 랩의 경영실적을 묻자 "상장사가 아니어서 노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윤 부사장은 한 직원의 모니터를 보여주면서 세컨드 라이프의 생활상을 얘기했다. 회원들은 자신의 분신을 캐릭터(아바타.avatar)로 만들어 또 다른 가상생활을 즐긴다. 수많은 섬(아일랜드)의 개념으로 이뤄진 지도에서 특정 공간(IBM 아일랜드나 샌프란시스코 도시 등)을 클릭하니, 아바타가 그 곳으로 순간 이동(텔레포트)한다. 회원 중에는 새 인생을 얻은 사례도 있다고 한다. 뚱뚱한 외모의 한 장애인(40)은 현실세계에서는 낙오자였지만 세컨드 라이프에선 멋진 외모의 20대 청년 사업가로 활동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20대 예쁜 여자친구와 스포츠카를 몰고 샌프란시스코 야구장을 다닌다. 린든 랩은 이르면 다음 달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는 "상반기 중 세컨드 라이프 내에 '서울' 등 한국의 도시도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린든 랩은 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 공간'을 만들기 위해 '육성' 대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지금은 모든 의사 표시를 문자로 한다.

샌프란시스코=이원호 기자

◆필립 로즈데일=1968년 출생. UC샌디에이고대(물리학과) 졸업.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를 조립했고 고교시절에 소프트웨어 회사를 차려 첨단 동영상 회의 시스템을 개발했다. 99년 린든 랩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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