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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동반자살(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대부분 자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는 8편의 비극을 썼는데 그 가운데 14종류의 자살을 소개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것으로 알고 두사람 모두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자살의 극작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발자크는 그의 소설속에서 21명을 자살시켰고,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도 13명의 자살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문학작품속의 자살로 가장 유명한 것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당시 유럽 일원에서는 이 작품에 감동되어 베르테르처럼 붉은 조끼를 입고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간 젊은이들이 끊이지 않아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미학적 추구는 동서고금을 통해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소월의 시에도 「죽음」은 자주 등장한다. 어떤 연구논문을 보면 그의 시 1백58편 가운데 3분의1이 넘는 47편이 「죽음」또는 「죽는다」는 표현을 썼고,유사한 이미지인 「지다」 「시들다」까지 포함하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자살을 처음으로 학문적으로 다룬 사람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다. 1897년에 낸 그의 역저 『자살론』을 보면 자살은 세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이기적 자살,또 하나는 사회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이타적 자살,다른 하나는 사회의 변화에 충격받은 무통제적 자살.
엊그제 신문을 보면 경찰관이 아내와 어린아들을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의 신병을 비관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그런데 왜 부인과 아들까지 자신의 죽음의 길에 억지 동반하려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동양은 서양보다 부자나 모자의 일체감이 강하다. 따라서 자기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가족을 놓아두고 혼자 죽는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배신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인과 자녀가 자신의 소유물인가. 그런 그릇된 사고만 없어도 이런 사건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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