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변혁기 새 인간상 제시|막심 고리키 저『어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어머니』의 무대는 막심 고리키의 출생지였으며 러시아의 오래된 도시인 니즈니노브고로드였다. 볼가강의 지류에 위치한 이 도시는 당시 볼가강의 주요한 항구이자 교역지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크라스노예 소르모보 조선소라는 큰 공장으로 유명했다. 이 곳은 전국 최대규모의 공장 중 하나로 볼가강을 운항하는 거의 모든 배가 여기서 만들어졌다.
이 공장이 작품에 묘사된 공장이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했고 당시 가장 많은 노동자가 밀집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랜 기간 노동운동의 전통을 이어왔다는 점등이 고리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공장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유명한 푸틸로프 공장에 견줄 만 했고 실제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진원지 중 하나가 되었다.
고리키가 선택한 수많은 인물들도 이 공장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인 파벨 블라소프는 실제인물인 소르모보 공장노동자 파벨 자몰로프와 대비된다. 그는 이곳 노동자들의 5·1절 파업시위를 주동했고 체포되어 장기형을 선고받았다. 주인공인 어머니 닐로브나는 자몰로프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여러 실존인물에서 취합되어 탄생했다.
이를테면 닐로브나와 마찬가지로 자몰로프의 어머니도 수녀복 차림으로 니즈니노브고로드 주변의 농촌을 돌아다니며 선전 문 건을 배포하고 다녔다.
또한 그녀는 구속된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교도소에 폭탄을 투척,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녀와 노동운동을 같이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어머니 아들들이 모두 이 소설의 인물에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리키를 그와 동시대인이자 평생의 벗이며 혁명가인 레닌과 비교하곤 한다. 레닌이 러시아의 피압박민중으로 하여금 혁명을 쟁취하도록 이끌었다면, 고리키는 그들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혁명의 감격, 노동계급과 민중의 위대함을 심어주었다고 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체험과 실천에 바탕한 글을 통하여 자신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을 조국과 혁명에 바치러 하였고, 그림으로써 언뜻 나태하고 추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민중의 삶을 통해 진정한 변혁의 주체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소설『어머니』의 출판은 러시아에 큰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다. 작품 제1부가 연재되었던 잡지는 압수 당하고 폐기되었다. 2부가 연재된 부분은 검열에서 심하게 삭제 당하고, 때로는 장 전체가 빠져 버리기도 해서 거의 읽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며 오랫동안 불법적인 지하 판 외에는 온전한 판을 구해볼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외국에서는 여러 나라 언어로 이 소설이 번역되어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어머니』는 세계의 모든 주요한 언어로 번역되고 있었다.『어머니』의 출판에 격분한 러시아 정부는 다시 고리키에 대한 체포·구금령을 내렸다. 당시의 소설에는 작가에 대한 소개가 거의 빠져 있었다.
그의 필명 막심 고리키는 언급되지 않았고 대신 세례명을 써서「알렉세이 막시노비치 페시코프, 소설가」라고만 기록되었다.
고리키는 카프리 섬에 피신해 있었고, 그'와중에서도 여러 신문·잡지에 글을 기고했는데 그 중에는 볼셰비키 기관지도 포함된다. 이 무렵 자신의 입장에 관해 그는, 1908년 1월 30일 작가 셴키치비치에게 보낸 편지에서「예술가는 민중의 척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리키는 사상적으로 확고하지 못했다. 그는 볼셰비키당원이면서 마하 주의자들과 교류하며 유물론과 관념론을 절충한 경험일원론에 빠져드는가 하면, 1917년 2월 혁명 당시에는 멘셰비키인 케렌스키 정부를 두둔하고 레닌에 반대하는 등 혼란 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를 위대한 사상가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그는 늘 민중의 편에 서고자했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이론이 아닌 실제 삶의 묘사를 통하여 그들을 사회와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체로 그리고자 했다.
변혁의 시대에 변혁의 담당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이로써 깨달음을 얻어 거대한 변혁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작업. 고리키는 문학을 통해 이 일을 해냈고 그것은 다시 전환기적 변혁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한국의 작가에게 지워진 짐이라고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