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화되는 선거의 경제충격(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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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운동이 초반부터 혼탁과 과열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가 우려해왔던 선거의 경제적 부작용들이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총선이 실시되는 3월 한달동안 경제안정의 기반이 얼마나 훼손될 것인지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곳곳에서 산업체의 인력이 선거운동원으로 빠져나가 일손부족을 호소하는 중소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고,은행·증권사·사채시장의 자금동향에서는 뭉칫돈의 선거판 유입을 짐작케 하는 조짐들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부분적 협상이긴 하지만 전국적 규모와 지역차원의 수많은 개발공약들이 쏟아지면서 땅값이 다시 들먹일 기세를 보이는 지역도 한두군데가 아니라는 소식이다.
더구나 호화판 정당행사에다 갖가지 향응과 선물제공이 조장하는 먹자판·놀자판의 소비심리는 무책임한 선심공약이 빚어내는 황금빛 미래의 환각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경제난 극복의 정신적 자산인 근면과 절약의 마음을 여지없이 마비시켜 버린다.
만원 한장을 더 주기만 한다면 공장에서 정당으로 자리 옮기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고 공짜로 주는 후보자들의 선물을 향해 유권자들이 앞사람을 밀치며 손을 내뻗는 분위기가 전국에 확산되도록 내버려둔 채 정상적인 생산과 수출활동을 유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국민경제의 양대 현안과제인 물가와 국제수지는 선거가 아니라도 연초부터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월과 2월 두달동안에만 무역수지적자는 30억달러를 넘어섰다. 소비재의 현저한 비중증가를 특징으로 하는 수입품의 구성은 우리의 소비억제노력이 더욱 강화돼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2월까지 두달동안의 물가 움직임은 작년의 같은 시기에 비해 다소안정됐다고는 하나 결코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더구나 3월에는 버스요금·대학등록금 등 공공요금과 일부 서비스요금의 인상분만으로 1% 가까운 소비자물가 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이사철을 앞두고 일부지역에서는 집세가 눈에 띄게 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자칫하면 3월 물가는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다 금주의 선거공고 이후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뿌려질 대규모 선거자금은 물가압박을 한층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난조에 빠진 경제를 선거가 더 깊은 궁지로 몰아넣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관위와 정부당국의 선거관리 기능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 1천명을 헤아리는 후보자 숫자가 말해주듯 선거판이 양적으로 급팽창한데 비해 총선관리기능은 형편없이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제발 정부는 선거용의 혐의를 받는 개발청사진을 만들고 발표하는 일을 그만두고 거기에 바치는 열성과 행정력을 당면 경제문제의 해결쪽으로 돌려야 한다. 서울지하도로 건설계획보다 당장의 물가안정책을 중시하는 쪽으로 정책개발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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