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소득을 곱지 않게 본 건 코란뿐만이 아니다. '돈 꿔 주고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경구는 마태복음 말고도 신약성서 도처에 등장한다. 이자는 근로나 사업처럼 땀이 배지 않은 불로소득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했다. 중세 교회법은 아예 이자 받는 것을 금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는 교환을 위해 만든 것, … 이자는 축재 방법 가운데 가장 자연에 반(反)한다'('정치학')고 설파했다. '화폐 불임설(不妊說)'이다. 한낱 종이.금속 조각인 화폐가 뭐기에 이자라는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는 통념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돈도 일반 상품처럼 수요.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 바로 이 '돈값'이 금리라는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중상주의와 산업화를 거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꽃핀 근세 이후다.
그러면 고대.중세의 금전 거래엔 이자가 없었느냐,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암시장의 고리대금이 널리 성행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기원전 5세기 로마의 '12표법(表法)'은 연 12%의 금리 상한 규제였다. 동서고금의 가장 저명한 빚쟁이로 기록될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은 16세기 유럽의 도시국가에서 사채놀이가 얼마나 횡행했는지 가늠케 한다. 구한말 고종이 내린 '전당포 세칙'에는 푼돈을 꿔줄 때 월 5%(연리 60%) 이상 받지 못하게 했다.
연 66%의 우리나라 법정 금리 상한선을 40% 정도로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하 사채시장의 실세 금리가 100%를 훨씬 웃돈다는데 억지로 '돈값'을 끌어내리려다 시장의 반격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책을 다루는 분들은 고리대금과의 힘겨운 투쟁의 역사를 한번쯤 들춰보고 심호흡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