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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절망을 희망으로" 쪽방촌 보듬기 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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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동 속칭 '쪽방촌'에서 몸 하나 누이면 그만인 쪽방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약 7백명이다. 대부분 가족과 떨어져 노숙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나마 날품팔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성한 사람은 이 중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거친 세월이 안겨준 병을 소주로 달래며 그저 하루하루를 견딘다. 절망이 희망을 압도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십수년째 희망을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쪽방촌에 하나뿐인 교회인 '광야교회'를 이끌고 있는 임명희(林明熙.46)목사. 1987년 이 동네와 연을 맺은 林목사는 꼬박 15년을 이곳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청량리역에 전도나갔다 만난 노숙자가 영등포 쪽방촌에 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따라갔죠. 그런데 좁은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옵디다. 그래서 이듬해 바로 교회를 세웠어요."

상처입은 영혼은 마음의 문을 안에서 잠근다. 세평짜리 판잣집에 교회를 차린 신학생 얘기가 쪽방촌 사람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예수쟁이'라는 손가락질 정도는 인사말로 들어야 할 시기였다.

"칼을 들고 찾아와 '목사놈 죽여버리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예배시간에 연탄재를 집어던지기도 했죠. 그 중 몇명과는 치고받기도 했어요. '깡패목사'였던 셈이죠."

냉대도 서러웠지만 가난도 문제였다. 헌금을 받기는커녕 돈이나 뜯기지 않으면 다행인 형편이었다. 林목사와 가족들은 콩나물 공장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몇년 만에 겨우 65만원 가량을 모았어요. 그런데 교인 하나가 그 돈을 들고 도망쳤어요. 쓴웃음이 나더군요."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우쳐 줘야 한다는 林목사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함께 복닥거리며 살다보니 쪽방촌 사람들도 그를 점차 '선한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이젠 林목사와 쪽방촌을 돌아보면 낮술에 전 채로나마 아는 체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다른 목사님들도 오셨지만 1~2년 만에 떠나셨죠. 하지만 저는 버텼습니다. 이젠 교인도 1백50여명이나 되고, 합숙소에 찾아와 술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죠."

쪽방촌에서 경험한 일들을 묶어 林목사는 최근 '절망촌 희망교회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책 얘기가 나오자 "내년 4월 철거되는 교회를 대신할 곳을 구하는 데 인세가 보탬이 됐으면…"이라며 잠시 궁색함을 드러내는 듯하던 林목사. 하지만 그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받자 금세 자신감을 찾았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를 여기서 용서하게 됐죠. 오히려 제가 마음의 평화를 얻은거죠. 전 어떤 큰 교회 목사보다 행복합니다."

글=남궁욱,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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