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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주자 주목하시오" 거장들 홀린 청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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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피아니스트 벤킴(24.한국이름 김진수.사진).

임동민(27).동혁(23)형제가 집중 조명을 받았던 2005년 쇼팽 콩쿠르 본선에서 그는 본선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이듬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ARD(독일 공영 제1방송)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같은 달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19)군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묻혀질 것 같던 그의 진가는 이내 드러났다.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 당 타이손은 "수상과 상관없이 가장 주목해야 할 연주자"라고 벤킴을 기억했다. 1위 라파우 블레하츠(21)와 연주 스타일이 비슷해 상을 타지 못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정갈하고 빈틈없는 연주를 한다는 입소문은 그의 독주회 티켓을 금세 매진시켰다. 7일 오후 7시 LG아트센터에서 독주회를 하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그를 만났다.

◆ 무대 밖에선 '스포츠 청년'="제가 우승한 콩쿠르의 기억이요? 너무 떨려서 '토'할 것 같았어요." 깔깔 웃는 그는 피아노를 놀이처럼 즐기는 연주자다. 우선 그에게는 '금기'가 없다. 공연을 앞두고 테니스를 치고, 요가.실내 암벽등반.산악 자전거도 즐긴다. 팔과 손을 아껴야 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취미다. 그는 세계 무대를 도는 피아니스트보다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에 가깝다.

손가락을 쫙 벌려서 닿는 건반은 모두 10개. 그렇게 큰 손은 아니다. 하루 연습시간 3~4시간. 연습벌레로 볼 수도 없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10분 정도 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요. 일본 독주회 때는 자느라고 사라져버려 난리도 났었죠. 음악회의 중간휴식 때도 저는 대부분 자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느긋하게 음악을 즐기는 젊은이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벤킴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음악학교에 다녔던 경험도 없다. 그는 줄리아드 예비학교와 같은 영재 코스를 밟지 않고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수학.화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때는 웬만하면 과학자가 되려고 했죠." 꿈도 다양했다. 정신과학 분야도 생각해봤다고 한다. 졸업 성적은 학교 전체에서 5등. 벤킴은 "그냥 재밌어서 공부한 건데 성적이 좋았어요"라고 한다. 이런 그의 연주는 지성적이고 치밀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 거장이 지목한 유망주=하지만 그의 천재적 재능은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우연히 지역 공개강좌에 참석한 세계적 거장 레온 플라이셔(79)교수는 당시 19살의 혈기방장한 젊은이를 "최정상급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전격 발탁했다. 플라이셔 교수를 따라 볼티모어의 피바디 음대로 진학한 그는 3년 만에 학부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내년 상반기까지 세계 각국에서의 연주 스케줄이 꽉 차있는 세계적인 연주자다.

호쾌한 외모는 국내 팬들이 결코 뿌리칠 수 없는 마력이다.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은 그의 스케줄을 모두 꿰고 있으며 한국에 올 때마다 객석을 채운다.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 치아키가 살아나온 것 같다"는 팬들의 말에 대해 벤킴은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라며 얼굴을 붉혔다.

7일 연주하는 바흐의 평균율,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등은 모두 5월 출전하는 퀸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칠 곡들이다. 그가 또 한 번 승전보를 울릴지 예측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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