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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의제서 빼자" 전 채널 동원해 총력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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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취임 직후 한국과 중국, 유럽을 방문했다. 총리로서 미국 방문은 처음이다. 두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회담한 뒤 정상 내외가 참여하는 만찬을 할 예정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은 ▶미.일 동맹 강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공조 강화 ▶이라크 문제 등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과 관련한 최대의 관심사항은 위안부 문제가 의제로 다뤄질지 여부다. 미 하원의 위안부 관련 결의안 상정 이후 아베 총리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 따른 미국 내 비판 여론이 고조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가급적 이를 의제에서 제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양상이다. 아베 총리의 요청으로 3일 밤 부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을 설명한 것도 이 같은 노력의 한 가지다. 아베 총리는 통화에서 "일본 정부는 줄곧 위안부의 아픔에 진심으로 동정을 표해 왔으며 앞으로도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진화에 나선 것은 자신의 발언이 미.일 관계에 생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미쳤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시오자키 관방장관은 4일 "미.일 정상 간 전화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믿는다. 일본 국민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을 믿고 있다'고 밝힌 사실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어서 아베 총리가 방미 기간 중 이 문제를 완전히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최고의 미.일 관계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재임 시절의 밀월 관계에 비하면 틈새가 벌어졌다는 인식이 많다. 베를린에서의 북.미 양자 협의와 6자회담 2.13 합의 등 미국의 대북 태도가 유연해진 반면 일본은 강경 자세를 고수하는 바람에 양국 공조 체제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의 방문 일정이 1박으로 짧은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카타르.쿠웨이트.이집트 등 중동 5개국 순방에 나선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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