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8분대」진입 황영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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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마라톤의 숙원인 10분벽 돌파(2시간8분47초)의 장거를 이룩한 황영조(22·코오롱·사진)는 요즘 기록 경신 후유증에 짓눌려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입술이 부르트고 무기력하며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신이 마라토너로서 인생의 목표로 내건 기록(2시간10분벽 돌파)을 너무 일찍 달성했기 때문일까.
황은 동료·선배들에게도 『무척 미안하다』고 말한다. 모두들 9분대 진입이라는 하나의 목표아래 그토록 고생을 해왔는데 신출내기인 자신이 덜컥 8분대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록에 자신이 먼저 놀랐다는 황영조는『인생의 목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데 대한 허탈감이 크지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상위권 진입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뛰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강원도 동해안 어부마을의 개구쟁이 「바다소년」에서 한국최고의 마라토너로 성장한 황영조를「스포츠 초대석」에서 만나보았다.
-놀라운 기록인데.
▲코스·날씨·컨디션이 모두 최상이었다. 특히 몸 상태가 완벽해 레이스초반에 10분벽「돌파를 예감했었다. 처음 5㎞를 힘든 줄 모르고 뛰었는데 기록은 놀랍게도 15분3초(세계기록 스플리트타임 15분5초)였다. 다른 때라면 엄청 지쳤을 기록이다. 이후 감독선생님이 『10분벽 돌파가 확실하니 그대로 내뽑으라』고 해 미친 듯이 달렸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한국대표 선발전(3월22일)이 눈앞에 닥쳤는데 자신 있는가.
▲솔직히 지금 몸 상태로 한달 보름 후에 또 풀코스를 띈다는 것은 무리다. 한번 풀코스 완주 후에는 적어도3개월은 쉬어야 한다는 게 육상계의 정설이다. 이는 탈진상대에서 회복되기까지 최소한의 기간이다. 국제적으로도 1년에 두 차례이상 풀코스를 뛰는 선수가 없다. 그러나 뛰어야 한다면 뛰겠다(한편 육상경기연맹은 황이 선발전에 불참하더라도 올림픽대표로 선발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사이클 선수였다는데.
▲삼척군 근덕중 2년 때 선배들이 사이클 타는 것이 멋있어 보여 사이클부에 들었다. 졸업 때까지 열심히 훈련해 도내대회에서 줄곧 상위 입상(도로), 당시 사이클 명문 양양고에 스카우트까지 됐었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학비·기숙사비등을 모두 부담키 어려워 육상부가 있는 강릉명륜고로 방향을 바꿨다. 중학교 때 간간이 출전한 군내 중· 장거리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많아 육상은 낯선 종목은 아니었다.
-체력과 지구력이 대단하다는 평인데.
▲사이클 타면서 다진 각근력이 마라톤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어렸을 때는 바다와 모래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수영·축구·야구·격구·달리기 등을 즐겼다. 아침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나가면 저녁때 할아버지가 데리러와야 들어갔으며 지금도 수영은 하루종일 물에 떠있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 있다. 체력은 이때 다져진 것 같다(그러나 황영조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 없이는 마라톤은 절대 기록향상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집안형편이 어렵다는데.
▲이젠 먹고 살만은 해졌다. 아버지(황길수·50)는 여전히 동네 사람들과 공동어장에 나가 고기를 잡으시고 어머니(이만자·52·해녀)도 자주는 아니지만 자맥질을 나가신다. 삼척여고 시절 전교 1∼2위를 다투던 큰누나(애란·26)는 가난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이천에서 공장생활을 했으나 이젠 강릉으로 돌아와, 학업(방통대국문과2년)과 함께 모 지방신문사에서 일하고 있고, 역시 삼척여고 우등생이던 둘째 누나(미란·23)도 대학은 못 갔지만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컴퓨터 전문학교에 다니고있다. 남동생(영주·18·명륜고2)은 내 뒤를 따라 지난해부터 육상을 한다.<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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