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양복(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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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일이 양복을 입은 모습이 처음 공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조총련산하의 한 출판사와 통신사에서 최근 동시에 공개한 여섯장의 사진가운데 한장은 김정일이 연형묵 총리와 함께 재일조총련동포들이 기증한 잡화류를 둘러보는 사진이고 또 한장은 잔디밭을 배경으로 김정일이 혼자 서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소개된 김정일의 사진은 거의가 「인민복」차림 아니면 작업복 또는 점퍼스타일이 전부였다. 심지어 지난 83년 처음으로 공식나들이를 한 중국방문때도 그는 줄곧 인민복을 입고 있었다.
그 김정일이 의젓하게 양복을 입은 모습이 처음 공개되었으니 화제가 될법도 하다. 그러나 양복입은 독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밝은색 넥타이에 뒷짐을 한 폼이 영락없이 김일성의 모습 그대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을 제외하고는 공식석상에서 뒷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특히 김일성을 수행하거나 면접할 경우는 대부분 손을 앞으로 맞잡아 겸손을 표시하는게 관례처럼 되었다.
그런데 김정일이 안입던 양복을 입고 뒷짐을 하고 있는 공식사진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그의 지위에 변화가 있다는 증좌다.
그동안 김정일은 대중앞에서나 공식석상에서도 정장인 인민복대신 간이복인 점퍼를 즐겨 입고 나타나곤 했다. 그것을 두고 해석도 구구했다. 어떤 사람은 주민들에게 소탈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선의로 풀이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혼자 돋보이기 위한 무례한 성격때문이라고 악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그동안 양복을 안입고 점퍼스타일을 즐겨한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난 80년대초 월북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김정일인상기」(『월간중앙』 89년 9월호)를 보면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다시 남쪽으로 되돌아온 그들의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다소 과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김정일의 인상은 지도자로서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1m65㎝의 작은 키에 체중 85㎏의 그는 스스로 『스타일이 없다』고 최은희씨에게 실토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굽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김정일이 양복을 입은 것은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면 변화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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