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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 무관심(주권의식 확립위한 캠페인/선거혁명 이루자:17)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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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성표보다 많지만 “누가 되든 상관없다”/「선심공세 대상」 오명 벗어날때
「여성표를 노려라」.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때마다 각 정당이 즐겨 사용하는 득표전략중 하나다.
바꿔말하면 여성유권자들의 한표는 그만큼 공략하기 쉬운 표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여성유권자들에게 씌워진 이 해묵은 오명을 씻어내는 것이 바로 여성들이 이뤄내야할 선거혁명의 과업이라고 여성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실 양적 측면에서 볼때 여성표는 남성표에 비해 월등히 많다.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여성유권자는 남성 유권자에 비해 32만6천명이나 더 많았다. 이런 현상은 13대 총선은 물론 기초·광역의회 선거에서도 이어져 작년 6월 광역의회 선거당시 여성유권자는 1천4백40만6천9백27명으로 남성유권자를 39만7천명이나 앞질렀다.
여성 유권자의 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한표 행사」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을 앞서고 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소장 손봉숙)가 중앙선관위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광역의회 선거의 경우 남성 유권자의 투표율은 58.5%였으나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은 59%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상은 기초의회 선거에서도 여전해 남성 유권자의 투표율 53.1%를 1.1%나 앞지른 54.2%를 기록했다.
문제는 여성 유권자들이 「바른 한표」를 행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주준희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정치학)는 여성 유권자의 가장 큰 문제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적 쟁점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지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것』을 꼽았다.
김학수교수(서강대·신문학)가 90년 1월 3당 합당이후 각 신문사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남성은 17%였으나 여성은 30%나 됐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이 작년 3월 발표한 「전국여성유권자 정치의식조사」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당시 유세장에 가본 자는 39.0%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스스로 관심이 있어 간 자는 28.0%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현재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 국회의원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응답자가 36.4%나 된 것은 여성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낮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교수는 『「정치는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무관심·무견해층이야말로 어떻게든 선거에 이기려고 하는 후보들의 선심공세 대상이 되며 결과적으로 타락선거를 유발시키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지난 선거때 아파트단지의 여성들이 불러 모임장소에 갔더니 표를 찍어줄테니 노래를 불러보라고 요구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며 『여성들은 정견을 말하면 심드렁해 한다』고 일부 여성들의 의식을 꼬집었다.
백영옥박사(메릴랜드대 강사·정치학)도 『여성들은 정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며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한다든지 쉽게 정치를 포기해버리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같은 정치불신이 후보들에 대한 선별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게 백박사의 견해다.
선거구마다 난립해 있는 후보들중 어떤 후보가 깨끗하고 훌륭한가,나와 밀접한 정책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 방향은 옳은 것인가를 차분히 따져 본 다음 한표를 행사해야만 유권자로서의 책임·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정치학자들은 지적한다.
여성유권자들은 여성의원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제로 여성후보를 지지하기보다 오히려 질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지역구에서 여성후보가 당선된 예는 제헌국회 이후 13대까지 10명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지방의회 선거와 여성후보자」 조사보고서에서도 기초의회 여성후보의 62.6%,광역의회 여성후보의 58.8%가 「여성이 여성을 안찍는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남성유권자들로부터 「깨끗하다」「참신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꼭 여성후보라 해서 여성들이 맹목적으로 여성후보를 찍는 것도 문제일 것이지만 여성의 정계진출을 돕는 쪽으로 여성들이 투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다.
여성 정치의식개혁은 선거운동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각 정당의 지구당 조직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70% 이상이 여성들이다. 실제로 선거때마다 호별 방문이 손쉽다는 점에서 돈봉투를 돌리거나 쟁반·수건을 나눠주는 일들은 여성 선거운동원이 도맡아 왔다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여성 선거운동원들이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가 범법행위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정치의식을 갖고 있거나,무조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그릇된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한 선거혁명은 이루기 어렵다. 백박사는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어디까지 협력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자기판단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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