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축제」만 하고 말건가/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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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는 항상 그랬다. 어떤 계기만 생기면 일본은 왜 한국 상품의 수입을 막는가,기술은 아예 안줄 작정인가,잘못된 한일역사관은 어째서 고쳐지지 않는가 하고 화를 냈다. 그리고고 그 시기가 잠시 지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잊어버렸다.
1월에 있었던 반일선동은 2월들어 잠잠하다 3·1절이 되면 되살아 날 것이다. 그 이후 「일본문제」는 망각속에 보내졌다가 8월이 되면 또 우리들의 중요한 관심사항으로 떠오를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인들은 이를 한국인들의 「반일축제」라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문제를 어떻게 풀어왔는가. 또 일본은 한국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를 더듬어 보는 것이 다음 축제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때만되면 반일구호
첫번째 경우. 수년전에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교수가 일본학자와 양국의 역사인식에 관한 대논쟁을 벌이던중 자리를 박차고 퇴장한 적이 있다. 일본인교수는 과거에 일본이 한국을 합병하지 않았더라면 러시아나 청이 한국을 점령했을 것이며 따라서 합병은 침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국인 교수는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느냐며 벌컥 화를 내는 바람에 일본 월간지에 게재하려던 좌담회는 중단됐다. 그 때문에 한국교수의 퇴장소동은 양국 학계에서 큰 화제거리가 됐다.
두번째 경우. 국내에서는 일본을 모질게 비판하며 이른바 국민여론을 대변한다는 일부 정치인들이 일단 동경에 내렸다 하면 전혀 다른 인물로 표변한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잘못된 역사교육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든가,심지어는 극동의 평화를 위해 일본의 방위비는 증액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어떤 이는 요리점에서 일본군가를 부르며 옛날을 회고한다. 대일본제국운운하는 「실수」도 저지른다.
날이 밝으면 일총리관저에 들러 사진을 찍고 양국 무역적자 해소나 역사왜곡 사실을 시정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총리나 정치인들은 양국간에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생길때일수록 『옛 일본 문화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건너왔다. 그런점에서 한국은 일본의 형님 뻘』이라는 말로 한국정치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일총리에게서 「한국이 일본의 형님뻘」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번째 경우. 한국의 대일무역역조나 일본의 기술이전문제를 협의하는 양국정부 당국자 회의나 민간경제협의기구 모임에서는 점차 한국측이 수세로 몰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원자재·중간재·각종 설비,그리고 하다못해 일본인도 너무 비싸 먹지 못하는 횟감까지 수입해가면서 적자를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또 한국 수출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 저하를 해결하지 못한채 일본더러 수입시장을 더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근본적인 산업구조 조정없이 단순히 일본과의 무역적자폭만을 줄이려 한다면 결국 미국·유럽과의 적자폭만 늘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에서 우리들은 일본인을 상대할 수 있는 논리와 해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 집단이 많지 않다는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일인의 대한사관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구체적 상황분석과 논리전개가 있어야하고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대가 엉터리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분개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부족한 일본전문가
지금까지 일본교과서의 한국역사왜곡내용은 대부분이 일본의 진보적인 단체나 언론의 문제제기로 시작됐다. 최근의 정신대 문제도 전직 일본인 교사의 양심선언으로 「비로소」우리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변에 있는 역사자료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연구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학생도,교수도,정치인도 벌컥 화내는 것으로 존재가치를 나타내려 했으나 결국은 일본의 자료에 의지하는 꼴이 됐다.
일본은 어떤가. 가장 극적인 예를 들어보자. 86년 가을 후지오(등미정행)당시 일본문부상은 「한일합방은 조선과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망언으로 파면됐다. 그의 발언으로 외교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와중에 열린 양국 외상회담에서 구라나리(창성정일)외상이 새삼스럽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일본측의 독도발언은 양국외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일본의 입장을 반드시 기록에 남기기 위해 어김없이 거론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었으며,다마 두나라 국민의 감정을 고려해 그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은 자국논리를 전개하고 국제기구에도 주장을 펼 수 있는 자료를 그렇게 쌓아가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여러차례에 걸쳐 과거 한국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를 거듭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조약형태로 남긴 공식사죄문서는 단 한건도 없다.
세번째 경우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심각성을 잘 나타낸 한 단면이다. 「대일역조를 해소하라」는 주장은 이제 먹히지도 않으며,한국 관리들도 그런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것을 매우 쑥스러워 할만큼 논리가 빈약하다.
외국인 직접투자 및 기술도입건수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기업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제 한국투자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불가측성이 많다는 것이다.
○감정적인 대응논리
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인들은 근무시간중에 신문을 보거나 자동판매기 앞에 모여 잡담하는 것,자주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등이 노동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일본의 지식층에서는 한국에 기술을 주어봤자,더이상 받아들일 태세조차 돼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자국상황이 나빠지거나 논리에 밀리면 역사문제를 들고 나온다고 푸념한다.
한국이 일본과 대화하고 일본을 이기려면 각 부문에 걸친 그들의 스타일을 치밀하게 분석,일관성있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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