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공사 이것이 문제다(하)|무리한 공사로 시민들 "사고불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상·하수관, 도시가스배관, 송전선로 등이 얼기설기 얽힌 지하를 파고 들어가 긴 터널을 뚫는 지하철공사현장 곳곳에는 항상 대형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71년부터 시작된 1기 지하철(총 연장 1백18·2km)공사기간 중 지하철공사 현장에서 4백24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 3백97명(사망 1백33명, 부상 2백64명)의 희생자를 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지하터널 1km를 뚫는데 평균 1·2명이 숨진 셈이다.
90년을 전후해 착공한 2기 지하철공사 현장에서도 서울 당산 동 지하철 5호선 공사장 노면붕괴(91년 11월27일)사고 등 3건의 대형 붕괴사고가 발생했고 4명이 숨졌다.
이같이 크고 작은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형식적인 지질조사가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착공시기를 무려 3년이나 앞당겨 설계도 끝나기 전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해빙기인 봄철에는 중지됐던 공사까지 한꺼번에 재개되는 데다 지반약화에 따라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어 서울시의 철저한 사전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공기 단축=서울시는 당초 93년 말 착공예정인 제2기 지하철을 3년이나 앞당겨 착공했다. 이에 따라 설계 일 정이 무리하게 잡혀 설계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졸속으로 공사를 강행, 스스로 대형사고의 소지를 만들었다.
지하철5호선은 기본설계가 끝나기 8개월 전인 89년12월에 실시설계가 발주됐고 7호선은 90년8월 기본설계와 실시설계가 동시에 발주됐으며 8호선은 기본설계완료 10개월 전에 실시설계에 들어갔다.
◇부실한 지질조사=발파작업 등으로 터널을 뚫는 NATM 공법에서는 정확한 지질조사가 안전공사의 필수조건. 그러나 서울시와 시공·감리 업체들은 비용과 공사기간을 절약하기 위해 1백m마다 탐사 봉으로 시추하는 표본 지질조사만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같은 형식적인 조사로는 토사·풍암·연암·경암 등으로 구성된 복잡한 서울 도심지하의 지질상태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3건의 대형사고는 모두 이 사각지대에 위치한 연약한 지반에서 안전조치 없이 발파작업을 감행함으로써 발생한 필연적인 사고였다.
2기 지하철구간은 중랑천·안양천 변 등 장기간 하천범람으로 퇴적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지반이 약하고 지하수 유출로 토사가 미끄러지는 편마암지대를 주로 통과하고 있어 별도의 보강대책이 없는 한 NATM공법은 부 적절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책=서울시는 지난해 10월과 12월 교수·전문가들로 특별점검을 실시한 끝에 1백m 간격으로 시추 공을 뚫게 돼 있는 현행 표본지질조사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직 시추조사간격을 줄이는 한편 수평시추 방식을 도입키 위해 장비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지하철개통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착공시기를 3년이나 무리하게 앞당긴 공기를 전면 재조정, 붕괴가능성이 높은 언약한 지반에 대한 정확한 사전지질조사를 벌이고, 이를 토대로 기본·실시설계 및 안전대책을 수립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끝><이하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