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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 고령화…'무서운 노장층'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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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지난달 17일 74세의 김모씨가 경찰에 구속됐다. 중학교 동창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암매장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그는 동창생을 죽이기에 앞서 그 동창생과 짜고 자기 아내를 숨지게 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한 부산 해운대경찰서 정진규 형사과장은 “김씨가 자기 아내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해놓고 보험금(2억5700만원)을 타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 전까지 김씨는 전과 기록이 전혀 없는 ‘보통 시민’이었다. 정진규 과장은 “자기 소유 집도 있고, 자녀에게서 매달 용돈도 받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다”고 말한다.
지난달 16일 대전에선 주택가를 돌며 고급 승용차 타이어와 휠 100여 개를 훔쳐 중고차량 용품점에 팔아온 양모(65)씨가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됐다. 양씨도 전과가 없었다. 대전 북부경찰서 김범수 강력4팀장은 “건설업을 하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난 뒤 생계가 어려웠던 것 같다”고 했다.


김씨와 양씨처럼 나이가 지긋해져서 ‘어느 날 갑자기’ 범죄에 빠져드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1996~2005년 10년간의 대검찰청 범죄통계를 보면 추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살인ㆍ강도ㆍ강간ㆍ절도ㆍ방화 등 5개 주요 범죄 통계에서 모두 노장층 범죄가 가파르게 늘었다.

10년 새 40세 이상 범죄자 비율은 ▷살인 2.1배 ▷강도 4.8배 ▷절도 3.0배로 각각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10대 청소년 범죄자는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형사정책연구원 최영신 박사는 “노장층 범죄자 급증은 기본적으로 인구구조의 급속한 고령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05년 현재 인구 열 명 중 한 명꼴. 2018년 고령사회(14.3%)에 진입하고, 2026년엔 초(超)고령사회(20.8%)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급격한 범죄 고령화를 해석하기 어렵다. 최 박사는 “최근의 성인범죄 급증은 산업화ㆍ도시화 속도가 빨라진 데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불안정이 심해진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국 사회가 1990년대 정치적 격변과 경제적 변동 속에 사회 해체가 본격화하면서 강력범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강도범의 범행 동기 중 ‘생활비 부족’ 비율이 96년 6.2%에서 2005년 15.0%로 커졌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절도죄가 급증하는 데 대해 법무연수원 범죄백서도 “실업자 증가에 따른 생계범죄”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는 ‘사오정(40대ㆍ50대 정년) 범죄’로 요약했다. 그는 “조기 퇴출 바람이 불면서 상당수 중ㆍ노년층이 생계를 잇기 막막해졌다”며 “최근의 범죄 증가는 이들 계층이 받는 사회적 중압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대 범죄자의 감소는 ‘부모의 자녀관리 강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자녀 수가 하나 또는 둘로 줄면서 부모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 결과 청소년 탈선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웅혁 교수는 “수적으론 줄고 있으나 소년범 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며 “범행 내용도 계획적이고 흉악해지는 등 성인 범죄를 닮아가는 점에는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교도소 등에 수감된 40세 이상 수형자도 급증세다. 지난해 1만3741명으로 5년 만에 18% 늘었다. 이 중 60세 이상 노인 수형자는 2005년 처음으로 1000명 선을 돌파했다. 20세 미만 수형자가 2000년 1046명에서 지난해 230명으로 준 것과 대조를 이룬다. 법무부 측은 “정확한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수용 프로그램 등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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