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30일 노 대통령 가장 긴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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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많은 말을 쏟아냈다. FTA가 왜 타결돼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설득하고 대통령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협상 시한(31일 오전 7시)이 임박하면서 노 대통령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청와대는 30일 하루 내내 팽팽한 긴장감에 뒤덮여 있었다.

6박7일간의 중동 순방을 마치고 30일 오전 9시5분 서울공항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헬기를 이용해 청와대로 돌아왔다. 간단히 세면을 마친 노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대기하고 있던 협상팀의 보고를 받았다. 오전 10시30분이었다.

보고를 겸한 대책회의는 11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열렸다.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노 대통령의 발언은 "최후의 순간까지 국익을 위해 최선의 협상력을 발휘해 달라"는 한마디뿐이었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 대통령이 자동차.농업.섬유 등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 "있었지만 밝힐 수 없다"고만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마지막 지침을 협상팀에 준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현종 본부장과 김종훈 FTA 협상대표는 "여러 가지 핵심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미 양 정상의 전화통화 이후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같다"고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대책회의 후에는 청와대 관저에 머물며 협상장으로부터 시시각각 들어오는 협상 내용을 보고받았다. FTA 협상을 둘러싼 기류는 오후 3시쯤 크게 출렁거렸다.

방송사들이 '시한 연장 가능성'이란 긴급 속보를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즉시 이를 부인했다. 김정섭 부대변인은 "협상 시한 연장은 없다"고 재확인했다. 김 부대변인은 "타결이 되든, 결렬이 되든 협상 시한 안에 결판을 낸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오후 4시. 청와대 서별관에서 권오규 부총리 주재로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열렸다. 한.미 FTA 협상이 서울 도심의 하얏트 호텔에서 열리는 만큼 관계 장관들의 기동성을 배려한 조치였다.

어둠이 오고 자정이 막 지난 시간. 협상장에서 "완전 타결"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이후 노 대통령은 숱한 반대를 뚫고 외롭게 안고 왔다. 2007년 3월 30일, 노 대통령은 집권 뒤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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