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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사실은 시인 배상은 외면/전문가들이 전망한 법적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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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전례 안남기려 시간끌기/“65년 협정은 불공정” 정부가 나서야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정신대의 실상이 속속 파헤쳐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 처리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을 상대로 한 배상청구는 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재해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65년협정은 전쟁에 동원되어 숨진 한국인 군인·군속등 징병에 따른 배상만이 고려되었을뿐 징병·정신대·학병·원폭피해자 등과 재일 한국인·사할린거주 한인 등에 대한 배상이 제대로 안돼 배상범위의 오류를 드러낸 「불공정조약」이었다는 것이 일본에 대한 추가배상 청구 논리의 핵심.
이병호 변호사(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고문)는 『애초부터 대상에서 제외된 정신대·징용노무자 등을 빼고라도 당시 30여만명의 징병 한국인이 숨지거나 행방불명되었음에도 2만여명만의 배상이 이뤄진 이 협정은 신의 성실의 원칙을 위배한 기망에 의한 계약으로 별도의 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측은 65년 협정체결 당시부터 최근 정신대만행이 폭로되기전까지 국가가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최근 국가기관의 행위임을 뜻하는 공식문서까지 발견된 상황에서는 국제법상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마땅히 추가배상을 해야할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조약당사자가 조약체결 당시 예견할 수 있었다면 그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만한 중대한 사정의 변화가 생긴 경우 당사국은 일방적으로 그 조약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이 원칙이 있기 때문에 『65년 협정으로 국가차원의 청구권은 포괄적으로 타결됐다』는 일본측의 주장은 모순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서울대 백충현 교수(국제법)는 『일본측은 최근 부녀자를 종군위안부로 종사케한 사실을 시인하는 분위기며 군대는 국가의 일부이므로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65년 협정에 의해 소멸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측이 추가배상을 청구할 경우 「국가대 국가」차원의 배상은 양국간의 새로운 배상협정체결이 최선책이지만 일본측이 계속 거부할 경우 한국은 국제연합(UN)산하 국제사법재판소(JCJ)에 배상판결을 청구할 수 있다.
규정상 법적구속력을 지니는 JCJ의 판결이나 구속력이 없는 「권고적 의견」 모두 실제 집행능력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배상책임분쟁해결의 유력한 준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불법행위의 발생 또는 인지로부터 일정기간내에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의 문제가 있으나 국제법상 소멸시효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관례며 피청구권자측인 일본 정부가 소멸시효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한 별다른 다툼은 없을 것이란게 법률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본측은 『한일 협정으로 국가차원의 청구권은 해결됐으나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며 개인차원의 배상의 길은 형식상 열어놓은 상태.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7일 박말자씨(69)등 종군위안부 피해자 3명과 군속·노무자등 35명이 일본 동경지방재판소에 1인당 2천만엔씩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일본은 대만인들이 똑같이 제기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10여년 끈후 대법원판결로 『배상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원고패소판결을 내린뒤 『도의적 책임은 인정된다』는 여운을 남겨 87년 특별법을 제정,3만명에 대해 2백만엔씩 지급하는 편법을 사용한 전례가 있어 주목거리.
즉 일본은 법적인 준거를 남겨놓을 경우 한국뿐 아니라 여타 국가로부터 밀려들 배상청구를 우려해 쉽사리 승소판결을 내리지 않을 전망이며 ▲피해자들이 소송을 통해 노출을 꺼려하는 점 ▲장기간의 소송기간과 비용 등의 문제를 간파,국가대 국가차원의 문제를 개인대 국가차원으로 돌려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일본의 가토 관방장관이 최근 『조약과 협정상 매듭이 지어졌지만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고 싶다』며 『개인배상 대신 정신대 구제기금 등으로 배상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것도 엄청난 여파를 몰고올 배상의 전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결국 국제법상 「피해자의 본국이 가해국에 대해 자국민이 침해당한 권리의 구제를 주장하지 않거나 소극적일때 가해국은 국제적 교섭의무를 지지않는 것이 관례」임에 비춰볼때 국가대 국가,개인대 국가차원의 배상 모두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전환만이 올바른 배상의 첩경임을 알 수 있다.<최훈·오영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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