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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공연장 '대통령 극비 관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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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7일 낮 뮤지컬 '명성황후'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2층 VIP석은 술렁거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경호실.부속실 직원 몇명과 함께 입장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공연 관계자 몇명만 아는 극비 사항이었다.

대통령 내외의 '007식' 공연 관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 삼청각에서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행이 갑자기 공연장에 나타나는 바람에 일부를 제외한 극장 측 관계자가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명성황후' 공연 관람도 오래 벼른 끝에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이는 대통령 내외가 공연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가뜩이나 대통령은 평소 "외부에 공연을 보러 가고 싶어도 경호상의 문제로 시민에게 불편을 끼칠까 저어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이 문화 분야에도 관심을 쏟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공연관계자들은 두번씩이나 '쥐도 새도 모르게' 공연을 관람했다는 소식에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어느 나라든 대통령 등 지도자급 인사의 공연 관람은 단순한 문화 행위를 넘어 일종의 정치적인 제스처다.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뉴욕 링컨센터에서 1백여m나 되는 레드 카펫을 밟으며 유유히 입장하는 등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뮤지컬이나 야구 관람을 즐기며 지역 산업 홍보의 최전선에 나섰다.

우리의 경우도 대통령이 공연을 관람하거나 경기장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해당 업계에 웬만한 정책 지원에 버금가는 심리적 후광 효과가 있다. 대통령이 '인당수 사랑가'를 본 뒤 공연장인 삼청각에 공연 문의가 쇄도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연관계자들은 대통령이 공연 등의 행사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레드 카펫을 밟고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피우며 공연을 봐달라는 게 아니다. 물론 경호 등 복잡한 문제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공연계 사람들은 '몰래 관람' 대신 대통령이 참가하는 '공개 축제'를 만들어 침체된 무대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듯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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