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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피해서 지방으로 … " 노·사 '로비 합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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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공사는 4년 내리 적자를 내고도 노무현 정부의 민영화 중단 방침 때문에 공기업으로 살아남았다. 누적적자가 100억원을 넘는 상태에서 이 공사 임직원은 지난해 반짝 흑자를 내자 '인센티브 잔치'까지 벌였다. 또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신 정치권에 줄을 대 회사의 활로를 찾으려 했다.

전문가들은 건설관리공사의 사례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박개성 엘리오앤컴퍼니 대표는 "현 정부가 민영화를 중단한 후 각 공기업이 사업다각화 등의 명목으로 앞다퉈 자회사를 늘렸지만 자회사는 정부 관리 대상에서 빠져 경영 부실이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 같은 폐해를 바로잡자면 민영화 재추진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또 공공성이 강해 민영화가 어려운 공기업에 대해서도 민간에 버금가는 인사 혁신으로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정책대학원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를 안 할 수도 있지만 대신 사람을 방만하게 늘리지 못하도록 견제장치를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민영화 중단이 부른 부실=2003년 현 정부가 민영화를 중단하면서 공기업의 부실 경영은 예고됐다. '일자리를 늘리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공기업마다 사업다각화 명목으로 자회사를 앞다퉈 신설했다. 그러곤 모기업 퇴직 임직원을 자회사로 대거 내려보냈다. 전문성이 떨어지니 경영 내실을 기대하긴 애당초 무리였다.

건설관리공사가 대표적 사례다. 이 공사는 삼풍아파트.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잇따르자 1999년 건설공사 감리를 엄격하게 하는 '책임감리제' 정착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도로공사.주택공사.토지공사.수자원공사 아래에 있던 감리조직을 통합해 출범했다. 임원과 주요 보직은 모조리 모기업 퇴직 임직원이 차지했다.

2001년까지는 모기업이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몰아줘 수익을 냈다. 그러나 2002년부터 모기업 지원이 끊기자 4년 내리 적자를 냈다. 감사원.국회예산처.정치권 등이 부실 경영을 문제 삼고 나서자 2005년 정규직 100여 명을 비정규직으로 돌린 덕에 지난해 반짝 흑자를 냈다. 그러자 직원끼리 '돈 잔치'를 벌였다. 직급별로 최고 기본급의 155%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받고, 임금을 최고 6.5% 올렸다.

이에 대해 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수주한 공사는 4~5년 걸리는데 2002년부터 수주한 일감에서 지난해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해 흑자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며 "인센티브도 공기업 운영규정에 따른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박진 교수는 "민간과 경쟁하거나 부실 경영이 개선되지 않는 공기업을 민영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민영화 원칙을 흔들면 공기업 사이에 5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식의 내성(耐性)만 키우게 돼 공공 개혁이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 지방 이전이 부실 공기업 생존책? =건설관리공사 노조가 정치후원금을 걷으면서 직원들에게 알린 공지사항엔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에 대한 정치권 발언권 강화'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지방 이전 공기업이 적자를 내면 정부가 지원하도록 한 '공기업 지방 이전 특별법'의 허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공사 본사의 지방 이전으로 정부 지원을 확보해 생존을 모색하려 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특별법의 이 조항 때문에 공기업 일각에선 지방 이전이 시작되는 "2012년까지만 버티면 적자가 나도 핑곗거리가 생기기 때문에 살아날 길이 열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신이 내린 직장' 공기업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는 셈이다. 또 지방 이전 공기업 직원에게는 주택.세제.금융 등 각종 혜택을 준다. 이 때문에 공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기 전에 부실한 곳은 솎아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별취재팀 = 이세정.정경민.윤창희(이상 경제부문)
이찬호.김종윤(이상 사회부문), 안장원 조인스랜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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