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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모델 열풍…1억명 '신데렐라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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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베이징(北京)의 젠궈루(建國路) 99호. 3천만달러(약 3백60여억원)를 들여 재단장한 차이나월드호텔(中國大飯店)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푸(中服)빌딩의 3층으로 올라가니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과장하면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에 왔다고나 할까.

오가는 이들의 키가 보통이 아니다. 남자들은 대개 1m90㎝를 넘고 여자들도 1m80㎝를 쉽게 넘는다. 바로 중국 최고의 모델들을 배출하는 신쓰루(新絲路) 모델 회사다. 1989년 중국 최초의 모델 대회를 개최한 이래 웨메이(岳梅) 등 많은 유명 모델을 배출, 모델을 지망하는 중국 소녀들에겐 '꿈의 공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지난 3일 '세계 수퍼모델'을 꿈꾸는 인쑤훙(尹素紅.22)을 만났다. "먼저 중국 최고 모델이 된 뒤 세계 무대마저 제패하고 싶어요."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맑게 웃는 모습에서 강한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서구 모델과 비교해도 키라든가 체형에서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표현력은 더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m83cm의 훤칠한 키, 어떤 역할도 쉽게 소화할 수 있을 듯한 매력적인 외모는 왜 신쓰루가 그녀를 공들여 키우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앞으로 2년 안에 세계 제패의 꿈을 이루겠다는 구체적 시간표도 갖고 있다.

그녀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주머니에 5위안(약 7백50원)밖에 없어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처지다. 허베이(河北)성 싱타이(邢台)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노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큰 키를 닮아 초등학교 5학년 때 1m70㎝를 넘었다. 그렇지만 병을 달고 살 정도로 몸이 약했다. 육상을 시작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였다. 중학교 때엔 최연소 나이에 높이뛰기 국가대표 2진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대퇴부 부상으로 운동을 포기해야 했다. 마음의 상처를 달래려 그녀는 혼자 농구에도 손을 대보며 운동에 대한 미련을 한동안 떨치지 못했다. 체육지도자로 진로를 정하고 싱타이시 11중학에서 체육을 가르치던 그녀에게 인생의 전기가 마련된 것은 99년 겨울.

방학 때 산시(山西)성 신쓰루 지부에서 모델 훈련을 받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지부 관계자에 의해 발탁된 것이다. 아버지는 펄펄 뛰었다. "여자는 평범하게 사는 게 좋다"는 강력한 반대에 막혀 2000년 춘절(春節.설)엔 집에도 못가고 텅빈 모델 훈련소에 혼자 남아 새우잠을 자야 했다.

반년에 걸친 가족과의 냉전을 겨우 이겨낸 그해 여름 처음 출전한 중국 수퍼모델 산시성 예선에서 2백대 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여세를 몰아 중국 전체 본선에 진출했지만 아무 상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흥분한 산시성 언론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충격에 빠졌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깊은 슬픔 속에 호텔 임시 사원으로 허드레 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수퍼모델은 외모뿐 아니라 내면의 수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3개월 방황을 끝내고 산시성 모델 훈련소로 되돌아갔다. 겸손하게 기초부터 새로이 다졌다. 그녀는 그런 노력 끝에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중국 수퍼모델 10걸'에 선정됐다.

중국은 올해를 '미녀 경제(美女 經濟)'의 원년(元年)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를 다투는 갖가지 대회를 준비, 모델 지망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몸 하나만으로 부(富)와 명예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중국의 모델 후보 지망생은 무려 1억명이다. 지난해 고작 한차례 열리던 '중국 패션 주간'이 올해부터는 분기에 한번씩 열리게 됐다. 'CC-TV 컵' '신쓰루 배(盃)'등 굵직한 모델 대회만도 연 8회 정도 열린다.

이유는 유명 모델 대회 또는 미인 대회를 개최할 경우 해당 도시에 관광 수입만 12억달러, 도시 브랜드 이미지만 36억달러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동방의 하와이를 꿈꾸는 하이난(海南)섬이 산야(三亞)시에서 최근 '미스 월드' 대회를 개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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