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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통상 전쟁」 살얼음|뜨거운 무역 마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새해 벽두부터 미국과 중국의 무역 마찰이 뜨거워져 올해 통상 전쟁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릴 공산이 크다.
미·중 사이의 통상 마찰은 걸린 문제가 한두개가 아니고 오래 전부터 쌓여온 것들이어서 어차피 한번은 터질 시한 폭탄에 비유돼 왔다.
우선 16일 통상 보복 시한을 앞둔 지적 소유권 협상이 가장 다급하고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의 계속 여부, 중국을 보복 대상으로 삼고 미 의회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죄수 노동을 이용한 수입품 반입 금지 움직임 등 중국은 이미 미국의 주요한 통상 마찰 국가로 등장했다.
또 지난해 11월말부터 미 산별 노조와 전국 소비자 연맹은 중국산 인형과 장난감에 대한 불매 운동에 들어갔다.
이처럼 파상적인 미국의 공세를 놓고 그동안 중국의 무더기 저가품 수출로 인해 미국 시장을 잠식당한 한국 등 신흥개발국과 아세안 (동남아 국가 연합)은 물론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도 미·중 무역 마찰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대미 수출의 확대 여부가 달려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두 나라 사이에 걸린 최대의 현안은 지적 소유권 협상.
미국은 중국을 상습적인 특허권 침해 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이 소프트웨어·특허권·상표권을 도용하는 바람에 미국 업계가 연간 4억 달러에 이르는 손해를 보고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미 무역 대표부는 지난해말 미 통상법 301조에 따른 조사에 착수, 오는 16일까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2억 달러 어치의 신발을 포함해 섬유·인조보석·손목시계 등 모두 15억 달러 어치의 상품에 대해 1백%의 보복 관세 (보복 관세만 3억 달러로 추산)를 부과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이 선정한 이들 품목은 중국의 대미 주종 수출품이고 중국 견제품이 아무리 저가라도 이 정도의 보복 관세를 맞을 경우 중국의 대미 수출은 사실상 중단될 것이란게 전문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앞으로 양국이 한번 더 협상을 갖기로 했지만 중국의 완전한 굴복이 없이는 통상 보복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다. 미국에는 의회와 재야 단체를 중심으로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인권 상황과 제3국에 대한 무기 수출을 문제삼아 무역에 있어 최혜국 대우를 박탈해 압력을 가하자는 대중 비난 여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마찰 시기는 최혜국 지위 연장을 의회가 승인하는 5월.
지난해 5월에는 「섣불리 중국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나에게 맡겨달라」며 중국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부시 미 대통령이 의회를 설득, 무사히 넘어갔지만 올해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 (미국 측 주장)가 중국의 수출 촉진 수입 제한 정책에 힘입어 89년의 62억 달러, 90년의 1백14억 달러에 이어 지난해에는 1백50억 달러 (미 무역 적자 7백80억 달러의 19%)로 일본에 이어 2위의 대미 무역 흑자국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에는 소련이 버티고 있어 아직 대소 견제용으로 중국 카드가 효용 가치가 있었지만 올해는 소련이 몰락하고 걸프전을 통해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선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것도 중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무기 수출국은 바로 미국」이라고 맞받아 치는가 하면 지난해 11월에는 전인대에서 인권 백서를 채택, 「어떤 국가도 인권을 빙자해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 경제발전 모델을 타국에 강요할 수 없다」며 미국의 간섭을 비난했다.
또 미국의 주장과는 달리 중국은 홍콩 자본이 중국에 투자해 생산한 뒤 홍콩을 통한 대미 우회 수출은 계산에서 빼야한다며 90년의 경우 대미 수출이 52억 달러, 수입은 66억 달러로 자신이 오히려 무역 역조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양측은 감정적 앙금까지 쌓여 마찰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미 무역 대표부는 지적 소유권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당초 2월16일을 통상법 301조에 따른 통상 보복 시한으로 정했으나 의회와 미국내 여론이 좋지 않자 행정부의 대중 입장이 강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한달 앞당겨 버렸다. 미국은 또 중국에 GATT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에 가입할 것을 권하면서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섬유 쿼타 협정이 타결돼도 중국이 GATT의정 회원국이 아닌 이상 쿼타를 배정해 줄 수 없다」고 을러대고 있다.
이처럼 칼자루를 쥔 쪽은 여전히 미국이다.
미국으로서는 아직 중국이 「부분」에 불과하지만 중국으로서는 수출 위주의 성장 정책과 외국 자본의 유치가 다급한 실정이어서 「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라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정면 대결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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