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선거 연기 총선서 결론내자/대통령 연두회견을 보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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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 대통령은 10일 연두회견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연기등 일부 문제에 관해서는 명백한 입장을 표명했으나 주목을 끌었던 민자당의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운을 남겼다.
이로 인해 단체장선거 연기를 놓고 국민들 사이에는 찬반논쟁이,여야간에는 정치적 마찰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며 민자당의 내분도 일거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론없는 연기는 유감
먼저 단체장선거의 연기문제에 있어 우리는 대통령의 문제인식을 원칙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본란을 통해 금년에 선거를 네번 치르는데 따른 문제점과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낭비를 우려해 왔다. 때문에 결과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명백하게 예상되는 문제를 민주화란 명분에 얽매여 질질 끌려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 의미에서 노대통령이 민주화와 경제를 다 놓칠 수도 있는 단체장선거의 연기를 차기총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 결정하겠다고 한 것은 충정을 이해할만 하다. 다만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같은 원칙변경이 공개적 토론과정이 없었고 또 한때 국무총리를 비롯,정부·여당 관계자들까지 슬슬 피하며 부인해오다가 갑자기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정부·여당의 이같이 떳떳지 못한 태도는 야당과 여론의 공격과 비난을 받아도 별 할말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단체장선거의 연기문제가 국가적 이해득실을 떠나 정쟁의 씨앗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연기여부를 놓고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토론이 전개되어 총선에서 유권자의 투표로써 결론이 도출되기를 바란다. 여당이 이기면 연기하고 야당이 이기면 연내에 실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민자당의 차기대통령후보 결정문제에는 노대통령 특유의 「의도된 모호성」이 그대로 되풀이 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김영삼 대표가 차기후보로 실질적인 가시화가 된 것인지,아닌지가 명확치 않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한 것은 민자당의 내부사정이 복잡해 노대통령이 어느 한쪽에 쉽사리 편들 수 없는 한계를 지닌데다 국민앞에 내놓는 명분과 정치세력간의 거래내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화 후속조치 주목
이런 가운데도 종전과 다른 시사를 찾는다면 김영삼 대표에 관한 언급에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김대표가 총재인 나를 대신해 당의 중심이 되어 선거를 치러낼 것』이라고 한 것이나 『김대표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는 나뿐 아니라 국민도 인정하며,내가 속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 내용은 주목을 끌만하다.
그러나 그는 이런 대목 못지않게 당헌이 정한 바에 따라 자유경선을 통해서 차기후보를 선출하겠다는 뜻도 누누이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각 계파는 편리할대로 해석해 희비의 일단을 보이는 모양이다.
우리는 노대통령의 진심이 어느 쪽에 더 가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자당 내부문제에 용훼할 생각이 없다.
다만 객관적인 느낌은 김대표의 가시화 수준이 그간 밀고 당기기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나 김대표를 자극해온 내각제 개헌의 완전 포기를 전제로 가시화에 언급함으로써 노대통령이 뭔가 방향은 잡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있을 후속조치와 민자당의 당운영 방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총재를 대신해서」라고 한말이 김대표의 위상강화와 연결되고 공천권 행사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되는 것인지,총선후 김대표가 자유경선에서 이길 수 있는 토양을 노대통령이 조성해 줄 것인지 등등….
이런 문제들이 진전되어 구체화되지 않으면 민자당은 다시 내분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 예상된다. 그때는 누가 누구를 속였다느니,누구에게 책임이 있다느니 하는 등의 훨씬 추악한 싸움의 양상이 될지 모른다. 우리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충분히 금도를 지켜줄 것을 기대한다.
국민의 높은 관심도에 비추어 볼때 노대통령이 정주영씨로부터 받은 정치헌금에 대해 시인·해명한 대목은 유의할만 하다.
○헌금시비 조기 매듭을
노대통령의 해명내용에 대해 야당은 이미 미흡하다고 비난했다. 국민들 가운데도 미흡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것이며 그 이상의 해명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것이다.
다만 당사자들간의 폭로·해명에서 교훈을 받아야 할 점은 이제 정치자금의 성격과 수수행태를 재검토해 보다 공개화·제도화해야겠다는 점이다. 과거 「성금」이란 명목으로 당연시되던 관행이라도 중단되어야 하며,꼭 정치자금제공이 필요하다면 법을 고쳐 당당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문제는 당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조기매듭지어지길 바란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대통령이 회견에서 밝힌 모든 내용이 곧 있을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냉철한 판단과 국가의 주인다운 결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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