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보다 더 그림을 사랑했고, 영화감독보다 더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 이헌익. 그가 돌연 우리 곁을 떠났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90년 초여름이었다. 영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디며 그가 선택한 첫 인터뷰 상대가 바로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던 영화 '남부군'의 감독 나, 정지영이었다. 그때 이헌익 기자가 쓴, 영화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춘 '남부군' 기사는 영화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신문지면이 요즘처럼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 한 꼭지의 영화기사가 지면 한 페이지를 차지한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빠져든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만나는 영화인마다 매혹(?)시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선한 바람이 되어 영화계를 누비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 영화계의 기둥이 된 이른바 1세대 프로듀서라고 칭하는 이춘연.신철.유인택.심재명.안동규 등이 그들이다. 그가 젊은 감독들에게만 관심과 애정을 준 건 아니다. 그는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과 임권택 감독을 끔찍이 존경했고, 그분들에게서 남다른 사랑을 받기도 했던 기자다. 영화기자가 영화인의 사랑을 받아? 그렇다. 그는 영화인들의 사랑을 받은 기자이다. 그런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이 세상의 추함을 들춰내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노력했던 이헌익. 그리하여 그 아름다움에 취하고 한없이 빠져들던 탐미주의자 이헌익. 그가 떠난 지금의 텅 빈 옆자리가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안타까움은 비록 나만의 센티멘털리티가 아니리라.
김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