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장 개방」눈에 뜨인다/부시 미대통령 방일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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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수치상으론 부시에 큰 선물/업계선 불만… 불균형원인에 시각차이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이 3박4일간에 걸친 일본방문을 10일 끝내고 귀국길에 올랐다. 중간에 부시 대통령이 쓰러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미·일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결과에 대해서도 미·일양국정부는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다.
양국은 9일 범세계적 차원에서의 양국협력관계를 명시한 동경선언과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행동계획(액션플랜)으로 이번 회담결과를 집약,발표했다.
동경선언도 중요하지만 실질 내용은 행동계획에 들어있다. 눈에 보이는 시장개방을 요구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일본의 선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행동계획의 골자는 정치·안보·과학·교류와 경제·무역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실천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형태로 돼 있다.
이중 가장 주요한 부문은 경제·무역 부문이다. 일본의 ▲쌀수입개방 ▲대미자동차 및 부품수입확대 ▲컴퓨터의 정부조달시장 개방 ▲종이 및 판유리시장개방 ▲대미수출보험한도 확대 ▲대미수입확대 ▲초전도 초고속 입자가속기(SSC)건설자금협력 등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들어있다.
이 문서에 나타난 숫자만으로 우선 일본은 94년도까지 미국산제품의 구입량을 90년보다 2백억달러 늘려야 한다. 일본자동차업계는 94년도에 현지조달분을 포함,미국산자동차부품을 1백90억달러구입,90년보다 1백억달러 확대하기로 했다.
또 일본의 23개 대기업은 내년도에 전기·전자등 미국으로부터의 상품수입을 90년보다 1백억달러 늘리기로 했다.
한편 일본은 아르투어 둔켈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사무총장의 초안이 자유무역으로 가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우루과이라운드(다자간 무역협상)의 타결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이는 둔켈초안이 미국과 유럽의 합의에 의해 합의되면 일본은 이를 따르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미·일 구조협의재활성화,자동차·종이·판유리등 3분야에 대한 일본의 배타적 거래인 이른바 「게이레쓰(계열)거래」를 배제하기 위한 일본공정거래위원회의 거래형태조사약속,각종 수입기준 및 절차완화등 일본시장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약속 등도 미국측이 올린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상 나타난 것만으로 볼때 일본은 미국에 상당한 양보를 한 셈이다. 일본이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의 태도가 전에 없이 강경했고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자유무역을 주창해온 공화당정권 대신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 일본으로서는 낭패다. 일본은 숫자로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약속이 이 정도로 그친데 만족,회담이 성공적이라고 보고있다.
미국의 업계나 민주당은 이같은 일본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만이다. 또 일본 업계도 미국의 요구가 워낙 거세 양보하기는 했지만 속이 쓰린 것 같다. 이는 미·일 무역불균형에 대한 양국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역불균형이 일본시장의 폐쇄성과 양국 문화의 차이에서 온다고 보고있음에 반해 일본은 미국의 상품경쟁력이 약한데서 오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미국업계나 민주당의 보호주의론자들은 미·일 무역 역조를 앞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문서로 결정하지 않는한 무역역조는 개선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게파트 미상원의원은 앞으로 5년에 걸쳐 연 20%씩 미·일 무역 적자를 축소,무역적자를 제로로 만들도록 일본에 요구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미국이 일본시장개방요구에 그치지 않고 정부간 문서에 숫자까지 넣어 무조건 얼마를 사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이다. 일반 소비자가 사지 않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일본에서 유럽차보다 미국차가 왜 안팔리는지를 미국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부시 대통령 방일에도 불구하고 미·일간 무역 불균형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며 무역마찰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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