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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0년대말까지만 해도 복덕방은 60대,70대 노인들이 소일삼아 하던 영업이었다. 손님이야 없어도 좋고,할일없는 노인들이 모여들어 장기·바둑을 두거나 잡담으로 소일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복덕방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복덕방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복덕방의 기원은 고려시대의 객주와 거간에서 찾아진다.
객주는 원래 거래를 알선하는 일종의 위탁매매업자를 뜻하는데,객주 가운데 타인간의 거래를 성립시키는 일을 거간으로 칭했다.
거간은 포목·가축·돈·집 따위로 전문업종이 세분화되었고,조선중기이후 그 가운데 집만을 취급한 거간이 복덕방의 원형인 셈이다.
해방후 노인들의 전문업종이 된 복덕방은 거래규모가 아주 보잘 것 없어 집의 매매·전세 등에 거간노릇을 해주고 작은 선물을 받거나,이따금 매매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얹어 거래를 성립시킨 다음 그 차액을 챙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복덕방을 차리는데 밑천이 들어간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해서 얻어지는 수입은 대개 노인들의 용돈으로 충당되었다.
복덕방을 차리는데 적지않은 자본이 투자되고,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이익금도 챙기게 되어 사업화·기업화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부터 였다.
노인들이 소일삼아 차려놓았던 복덕방들은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돈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듯 복덕방업에 뛰어들었다.
어느새 복덕방이라는 이름조차 사라져버리고 「공인중개사사무소」「부동산 중개인 영업소」같은 그럴듯한 이름들이 멋진 간판을 장식했다.
70년대후반 고도성장의 여파로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면서 부동산거래질서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복덕방은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복덕방 영업을 규제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서 당국은 84년 부동산중개업법을 제정했다.
그 법이 제정된지 벌써 8년째로 접어들었는데도 무자격업자의 은밀한 부동산 거래는 근절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이에 따라 건설부는 무허가 부동산중개행위를 근절하고 부동산거래질서를 양성화하는 방향으로 현행 부동산중개업법을 다시금 전면 개정하리라한다.
법에 하자가 있으면 고쳐 나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할아버지들의 복덕방시절이 오히려 그리워진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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