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68년이 지난 84년 9월 22일. 전쟁터였던 그곳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섰다. 당시 독일 총리였던 헬무트 콜과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이었다(사진). 게르만족의 대이동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1500년 유럽 역사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대표적인 적국(敵國)이었다. 평화는 짧았고, 전쟁은 길었다. 서로에게 남긴 상처는 치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불신과 증오의 벽은 높았다. 그러나 콜과 미테랑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였던 베르됭에서 손을 잡았고, 역사 앞에서 화해했다.
콜과 미테랑의 악수로 상징되는 독일.프랑스의 화해가 없었다면 유럽 통합은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유럽 통합의 선결 조건은 두 나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의 정치적 지도력과 경제적 지도력을 각각 대표한다는 데 양해했다. 또 통일 이후 독일을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용해시킴으로써 독일 통일에 대한 유럽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데 동의했다. 두 사람의 합의는 90년 1월 콜.미테랑 공동선언으로 구체화됐고, 92년 2월 단일시장과 단일통화를 주축으로 하는 EU를 창설하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발전했다. 전쟁의 땅이었던 유럽을 평화와 공동번영의 땅으로 바꿔 놓기 위해서는 독일과 프랑스가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콜과 미테랑이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했기에 오늘의 유럽은 가능했던 것이다.
불행한 과거의 유산을 물려받은 동아시아에 과연 브란트와 콜, 미테랑 같은 사람이 있는가. 유럽 통합의 아버지인 장 모네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의 모하맛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국.중국.일본을 묶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두 차례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동아시아를 21세기 평화와 공동번영의 신천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걸출한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두 나라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전제될 때 동아시아공동체의 꿈은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동아시아는 일본의 브란트와 콜, 중국의 미테랑을 기다리고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