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실서 새해맞는 사연(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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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다른 애들처럼 세뱃돈도 받고 떡국도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집에선 아무도 절 반겨주지 않아요.』
2일 오후 2시 서울 청량리경찰서 형사계 보호실.
가출 1주일동안 무려 여섯차례나 금품을 훔친 김모군(16·무직·성남시 오야동)은 차라리 붙잡힌게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새엄마랑 살고부터 아빠는 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새엄마는 툭하면 화를 냈고 매도 들었어요.』
김군의 아버지(50)가 김군의 생모와 이혼하고 지금의 엄마(35)와 재혼한 것은 6년전. 번창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가정불화는 시작됐고 결국 김군은 새엄마를 맞았다.
김군에게 새엄마는 전혀 낯선 사람이었고 새엄마도 김군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
아버지도 김군보다는 새엄마가 데려온 여동생(13)을 더 귀여워했다.
유일하게 말벗이 됐던 형(20)마저 대전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집을 떠나 김군은 더이상 정붙일데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잦은 무단결석으로 중1때인 2년전 제적됐고 이때부터 남의 물건에 손대기 시작했다.
더구나 90년 절도죄로 소년원을 다녀온 뒤로는 집에서 완전히 내놓은 아이가 됐다.
결국 지난달 26일 다시 집을 뛰쳐나온 김군은 어렸을때 생모와 살던 서울 회기동 일대를 배회하며 밤마다 인근 음식점 등의 창문을 뜯고 들어가 금품을 훔쳤던 것.
『한복입고 엄마 아빠와 손잡은 채 놀러가는 애들이 얼마나 부럽던지….』『혹시 아버지가…』하며 형사계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군은 결국 차가운 보호실구석에서 모포를 뒤집어쓴 채 쓸쓸히 새해를 맞을 수 밖에 없었다.<김종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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