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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도 과거 묻고 의기투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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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과 일본이 벌어졌던 틈새를 바짝 좁히고 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일, 일.중 관계가 다 벌어졌다. 그러나 올 들어 중국은 실용외교로 확실하게 돌아서고 있다. 다음달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일본 방문은 두 나라의 역사적인 짐을 벗어던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의 역학 관계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 다툼을 벌이고 있다.

◆ 의기투합하는 중.일=두 나라는 이미 '전략적 호혜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난해 10월 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서다. 양국 관계 전문가인 고쿠분 료세이(國分良成) 게이오대 교수는 "당시 공동문서에 대만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관한 표현이 한 줄도 들어가지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중국 외교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 뒤 국방 수뇌부 간 핫라인 설치 등 군사협력까지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해군 함정뿐 아니라 양국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도 추진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최근 하얼빈~다롄(大連) 간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기술 지원을 가와사키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에 타진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지역 노선에 요구되는 특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 측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이 같은 기술적인 문제를 감안해도 1년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 일본 외교력의 확장=호주와의 안보 공동선언은 일본의 외교전략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공동선언 발표에 따라 당장 태평양 해상에서 미국과 호주.일본이 참여하는 공동 군사 훈련이 실시된다. 미.일.호 3국간 외무.국방 장관 연석회담 (2+2+2)도 정례화할 전망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동맹국인 미국과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하되 그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과 권익을 최대한 강화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호주-일본-인도로 이어지는 4자 연대를 굳건히 다지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외교전략에 대한 아베 총리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지난해 발표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4개국이 정상 또는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해 아시아에서 이 가치를 다른 나라들과 어떻게 공유해 나갈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전략은 동남아시아 외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화교 경제권을 기반으로 자국 영향권을 강화하려는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일본에 안보 역할을 맡기는 것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 든 사탕을 먹이는 것과 같다고 경계하던 싱가포르가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일본의 역할 증대를 요구하는 선봉 국가로 돌아섰다."

◆ 중국은 전방위 세계 전략 구사=중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중동.아프리카.남미 등 전 세계를 향한 강대국 외교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아프리카 전체 53개국 가운데 48개국의 정상 혹은 정상급 인물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토론 주제는 에너지였다. 중국은 이 자리에서 아프리카로부터 석유.천연가스.석탄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대신 의료.농업.주거 분야를 지원키로 합의했다.

국경 문제와 지역 주도권을 놓고 반목을 거듭해온 인도와도 중국은 주저 없이 손을 잡았다. 중국국가개발개혁위원회의 마카이(馬凱) 주임이 지난해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무를리 데오라 석유장관을 만나 공동 유전개발을 위한 합작사 설립에 합의했다. 미국이 싫어하는 이란과는 무기와 석유를 현물 교환해 온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해 4월 태평양으로 날아가 호주.피지 등 자원국과 에너지 협정도 체결했다.

베이징.도쿄=진세근.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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