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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꼬인 범여권 '단일후보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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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권에선 이런 구도를 흔들 몇몇 변수가 꼽혀 왔다. 그중 하나가 '한나라당의 분열'이다. 또 다른 하나는 '범여권 단일후보의 등장'이다.

범여권은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이끄는 통합신당모임, 천정배 의원 등 민생정치모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민주당, 국민중심당, 손 전 지사 세력을 망라한다.

범여권은 당초 손 전 지사의 탈당이 지지부진한 단일후보 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일후보 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퍼져가고 있다. 왜 그럴까.

◆ 복잡해진 '통합 방정식'=원래 범여권의 통합 시나리오는 '열린우리당(친노파 제외)+탈당파+민주당+외부세력(정운찬 전 총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으로 반(反)한나라당 전선을 꾸린 뒤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로 단일후보를 선출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손 전 지사가 더해졌다. 그러나 손 전 지사는 '여럿 중 하나'로 참여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범여권 세력이 자신에게 흡수돼야 한다는 구상이다. 통합 구도가 복잡해진 것이다.

범여권 의원들의 지지세 역시 여러 갈래로 쪼개지고 있다.

통합신당모임의 변재일 의원은 '깨끗하면서도 유능하다는 이미지'를 손 전 지사의 경쟁력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같은 모임 소속의 다른 의원은 "판을 흔드는 역할은 하겠지만 본선 경쟁력은 회의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천정배 의원은 아예 손 전 지사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손 전 지사가 진보진영 시민단체.종교계.문화계 등과의 연대에 주력하면서 '외부 인사'들의 위치 설정이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손 전 지사가 미리 둥지를 튼 판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들러리를 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 전 총장에겐 뚫어야 할 또 하나의 관문이 추가된 셈"이라고 말했다. 외부 세 확산을 염두에 둔 박원순 변호사, 문국현 사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도 손 전 지사의 등장으로 주도권 경쟁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폭이 넓어진 주자군 사이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통합의 걸림돌로 거론된다. '3불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차가 대표적이다.

3불정책 폐지론자인 정 전 총장에 대해 국회 교육위 소속인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은 "입장이 바뀌지 않은 채 정치에 입문할 경우 가슴속에서 지울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 의원은 3불정책 유지론자다.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 등 범여권 주자들은 대부분 3불정책 유지 쪽이다. 범여권 분열이 노선 싸움의 양상을 띠었던 만큼 통합 과정에서도 이념 갈등은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 빈약한 흥행 무대=통합이 어려운 더 큰 이유는 손 전 지사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범여권의 지지율에 반등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 때 '이인제 대세론'을 누르고 형성된 '노무현 바람'에 힘입어 여권은 한나라당의 기선을 제압했다. 현재 범여권의 경우 주자는 많지만 흥행 무대가 좀처럼 형성되지 않고 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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