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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축·경협분야 진전기대/남북한관계 새해엔 어떻게 펼쳐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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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민족통일연구원이 본 앞날/북,체제 안다치는 범위 “통제개방”/김정일 권력승계 여건조성 주력 북/재야인사 접촉… 통일론 백가쟁명 남/이산가족 교류문제도 구체논의/걸림돌 핵사찰 문제로 합의서 따른 평화공존체제 구축엔 시간 걸릴듯
남북간의 화해·불가침·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작년 12월에 타결됨에 따라 새해에는 남북한이 본격적인 교류·협력의 시대로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91년 4월초 발족한 민족통일연구원(원장 이병룡)이 작년 12월 5차 고위급회담이 끝난 직후에 처음으로 남북관계를 전망하는 연례보고서를 냈다. 새해의 남북한관계가 상당한 주목을 끄는 가운데 나온 민족통일연구원의 연례보고서 「통일환경과 남북관계­1991∼92」의 내용 가운데 새해 전망부분을 중심으로 그 요지를 소개한다. 이 보고서는 통일환경·북한정세·남북한관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편집자주>
▷통일 환경◁
동북아질서의 새로운 추세는 ▲4강간의 세력균형 변화 ▲역내군축 진전 ▲안보면에서 다자간 협의체 발전 가능성 ▲역내 경제권 형성과 다자간 경제협의체 형성등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군축추세가 중·장기적으로 유지돼 남북한간의 정치·군사적 대화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이 APEC를 매개로 한 동북아 경제권에 편입될 것이며 그 결과 남북한간의 경제교류와 협력이 증진될 것이다.
일본·중국 역할의 상대적 증대가 통일환경에 불확실성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이 군사·정치대국화 못지않게 한반도 긴장완화에 관심을 갖고 있고 중국으로선 당분간 경제문제 해결과 정치안정에 정책우선순위를 둘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조만간 국제핵사찰을 수용할 경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남북한관계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정착을 실현하고 정치·경제통합을 앞당기려는 노력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국내정세◁
새해에도 북한은 91년과 마찬가지로 김일성 중심의 현체제와 이념의 공고화에 주력할 것이다.
91년말 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이 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되기는 했지만 이 자체는 승계여건을 조성하기위한 마지막 조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92년에 7차 당대회를 개최해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완전히 공식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92년 4월에 김일성 80세 생일잔치와 7차당대회라는 두가지 대규모 행사를 치르기도 어렵고 3차 7개년계획의 경제실적을 가시화하기 전까지는 7차당대회를 통해 권력승계를 마무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외부채·무역적자에 따른 재정난과 식량·에너지난,기술·설비시설이 낙후에 따른 경제침체는 새해에도 크게 호전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히 소련·중국의 원유대금 경화결제 요구는 북한에 큰 경제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혁·개방이 불가피하지만 시장경제화와 민주화가 체제유지에 도전 요인이 될 것이므로 체제가 손상받지 않는 범위내에서 「통제된 개방」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새해에는 91년에 확인된 두만강지구 경제무역지역 개발구상이 구체화되어 실행될 것이다. 한편 북한사회 내부의 일탈행위와 사상동요·체제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경제사정이 당분간 호전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제한된 범위내에서나마 개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제와 개방사이의 긴장이 높아지고 이때문에 이로부터의 점진적인 체제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북한 대외관계◁
◇북­소관계=새해의 북·소관계는 기존의 정치·경제·군사적 협력관계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양국은 동질성을 추구할 수 없게 됐고 오히려 상호 체제비판 단계에까지 접어들 것이다. 소련의 경제난 심화로 경협지속이 어려울 것이고,소련 연방정부가 군사통제권을 상실하게돼 양국 군사동맹은 유명무실해지고 소련의 대북군사원조 또한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실리에 따른 현실주의 외교관계가 새로 정립될 것이다.
◇북­중관계=북­중관계는 정치적으로 내부체제 단속과 관련,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북한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확대하려 할 것이고 중국의 대북협력은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여부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북한의 대일·대미 조기수교,대남관계 개선,핵무장 포기를 적극 권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일 관계=북­일관계는 북한의 핵사찰 전면수용 여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생일 전까지 핵사찰수용에 성의를 보이면서 일본과의 수교교섭을 가속화할 것이다.
북­일간의 수교교섭에서 보상원칙에 대한 진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양국은 경제교류와 협력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북한은 또한 인민외교차원에서 정계·재계·학계·문화계등 각분야 인사들의 상호방문 및 초청을 통해 유대를 강화해 수교교섭과정과 수교후의 입지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북·미 관계는 북한의 핵사찰수용과 실행에 달려 있다. 북한의 핵안전협정 서명이후에도 국내비준절차의 최대한 지연,핵무기개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핵재처리시설 폐기를 포함한 북한의 핵무기개발 포기의 확약이 있기 전에는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다.
한편 북한은 앞으로 「통제된 개방」형태라도 대외경제 개방을 확대해 나갈 것이므로 ADB·IMF·IBRD등과 같은 국제경제협력기구가입을 신중하게 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핵사찰문제등 대미관계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국제기구로부터 지원을 받고자 노력할 것이다.
▷북한 대남정책◁
지금까지 북한은 통일전선 사업을 포기하지 않은채 주변정세의 변화에 부응,당국회담에 응하면서도 위장평화공세를 전개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해왔다.
5차 고위급회담에서의 남북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채택에 따라 북한은 새해에 합의서 내용의 구체화와 함께 경제·문화·체육교류등의 확대에 응할 것이나 위장평화공세와 통일전선전술에 기초한 기존의 대남전략을 쉽사리 수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4대선거를 계기로 북한은 한국의 학생 및 재야세력의 반정부·반미투쟁을 선동하고 범민족대회 개최등을 통해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한 통일전선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일시적 난국타개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합의서채택에도 불구하고 대남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새해에도 북한은 한국과의 당국간 대화를 지속하고 이를 부각시켜 국제적 고립탈피를 추구하며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 방지와 체제유지를 모색하면서 통일전선전술에 입각한 대남선전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한 관계◁
◇남북한간의 정치·군사문제=북한은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의 탈피,대미·대일 관계개선 및 협상의 필요성,중국·소련의 요구,핵사찰압력 모면등 때문에 새해에도 남북고위급회담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합의서에 기초해 정치·군사·교류협력등 3개 분과위원회가 금년 3월19일까지 설치,가동되고 남북연락사무소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 등은 5월19일까지 설치·운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분과위원회와 공동위원회가 설치되면 앞으로 남북대화는 분야별 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다.
그러나 합의서를 바탕으로 한 남북한 화해와 평화공존체제 구축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첫째,「평화상태로의 전환」과 관련하여(합의서 5조) 남북당국간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해온 한국 입장과 미­북한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온 북한입장이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한국의 당사자자격을 문제삼아 남북간 평화협정체결을 회피하고 합의서상의 「공동노력」표현을 근거로 미·남북한 3자회담 개최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둘째,남북화해를 위한 합의내용(상호체제 인정·상호불간섭,비방·중상금지,파괴·전복기도 금지등 합의서 1­4조)의 실행 과정에서 북한의 이행준수를 보장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이 공식언론채널과 함께 비공식 선전매체(한국민족민주전선의 「구국의 소리 방송」)를 운영해온 점과 관련,한국의 4대선거 실시과정에서 비공식선전매체 중심으로 대남 비난선전을 강행할때 남북한간 갈등발생의 소지가 있다.
셋째,북한의 미국 핵우산 제거를 겨냥한 「비핵지대화」논리와 한국의 북한 핵개발포기를 겨냥한 「비핵화」논리가 상당기간 대립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한 최고위급 대화의 필요성이나 북한의 김정일 권력승계기반강화의 필요성에 따라 금년 초반에 남북정상회담이 조기실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합의서 실행과정에서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도 활성화될 것이다. 국내 재야인사들의 북한접촉기회가 확대되고 각계각층의 통일논의 활성화,남북접촉창구의 다원화 요구등에 따라 국론통일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핵문제와 관련,북한이 핵안전협정에는 서명할 것이지만 남북한이 핵우산제거문제와 핵개발 포기문제의 우선순위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의 조기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기도 하며 북한의 대미·대일 관계 진전의 카드로 될 수도 있다.
◇교류·협력문제=금년 상반기에는 남북 쌍방간에 경제교류실무협의가 진행되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또한 한국측은 남북한의 비교우위상품의 교역확대,교통통신망의 연결,지하자원 및 관광자원의 공동개발,송유관 및 가스관의 공동건설등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간 교류확대를 위한 선결과제인 가격결정·결제통화·수송·관세부과등은 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에서 비교적 쉽게 타결될 것으로 예측된다. 신용장거래와 대금결제를 위한 양측 은행사이의 외환거래계약도 금년중에 합의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간에 새로운 청산계정의 개설에 대한 합의도 필요해질 것이다.
북한지역의 경제특구개발에 한국참여의 가능성도 있다. 금년 1월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UNDP회의에서 한국의 참여여부와 방법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금년에 남북경제교류 및 협력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선교역 후투자」방식과 간접·직접교류의 혼합형태가 나타날 것이며 교역량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합작투자가 성사된다면 북한 서해안대륙붕의 석유 및 천연가스개발,두만강특구개발,비무장지대 공동개발등의 사업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한편 남북합의서 채택으로 금년중에 남북체육교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만일 남북체육회담에서 92년 올림픽 단일팀구성이 성사되면 금년 중반기에 종목별 평가전을 위한 상호왕래가 잦아질 것이며 이를 계기로 경기 상호개최,특히 대학간 친선경기,통일축구의 정례화,국제경기의 남북공동개최등이 활성화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타분야의 교류·협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북합의서에 근거해 교류·협력분야의 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남북당국간의 문화교류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문화교류확대기반이 마련될 전망이다.
북한이 언론·방송교류의 전면확대에서 파급되는 사회개방을 우려하는 점을 감안할때 금년엔 신문·라디오·TV를 통한 상호비방·중상 중지 실행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은 체제유지와 관련,부담이 적은 과학기술·전통예술·민속학·순수예술등의 교류에 적극성을 보일 것이다.
그런데 남북한 문화·학술교류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창구일원화」와 「다원화」문제가 심각한 논쟁을 이끌 수도 있다.
이산가족 교류문제도 다소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서신왕래,고령자 이산가족 상봉,성묘단 방문,휴전선 근처의 면회소 설치등을 제기할 것이다. 북한은 일단 의제에는 동의하겠지만 협의과정에서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동시교환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류지속화를 위한 구체적 합의도출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한국내 양심수·정치범·방북자·미전향 장기복역수등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담이 난항에 빠질 수도 있다.
◇국제기구에서의 남북한 관계=북한이 유엔·유엔산하기구·전문기구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이 경제관련 국제기구에의 북한가입을 지원할 경우 국제무대에서 남북협력이 확대될 수 있다.
경제분야의 국제기구에서 남북접촉이 늘어날 경우 마약·환경보전·에너지등 경제밖의 전문분야에서도 남북한 협력이 촉진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군사분야의 국제기구에서는 핵문제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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