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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승계작업 차질 빚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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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차그룹은 일단 세무조사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입장이다. 검찰의 비자금 사건 조사에 따른 예견된 후속 조치라고 설명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다른 의도가 있는 조사로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무조사를 바라보는 정부나 재계의 시각은 다르다. 우선 조사 주체다. 정기 법인세 조사를 담당하는 곳이 아닌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이 맡았다. 강도 높은 특수.기획 조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 4국이 뛰어든 뒤 '빈손'으로 나온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서 걸러내지 못한 부분이 파헤쳐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무조사 대상이다. 조사 대상인 3곳의 계열사 모두 정몽구 회장과 장남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회사다. 3개사 모두 검찰 수사 때 압수수색을 당했다.

◆ 후계 구도 어떻게 되나=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짜여 있다. 그룹 총수가 안정적인 지배권을 가지려면 이들 계열사 중 한 곳의 지분을 다량 확보하면 된다. 지금까지 현대차는 정 사장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 사장이 지분을 많이 가진 비상장 계열사의 덩치를 키워 증시에 상장하고, 여기서 번 돈으로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의 지분을 늘리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현대차 비자금 수사로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현대차 물류 전문기업인 글로비스는 상장을 통해 정 사장에게 그룹 지배권 확보를 위한 종자돈을 마련해 줄 회사였다.

비자금 수사 당시 정 사장의 글로비스 지분 평가차익은 4000억원에 달했다. 그룹 내 건설공사를 맡고 있는 엠코도 정 사장이 1대 주주(25%)다. 카오디오 등을 만드는 현대오토넷은 지난해 2월 본텍과 합병했다. 이에 앞서 정 사장은 2005년 8월 본텍의 지분 30%를 지멘스에 팔아 570억원을 마련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조사가 현대차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는 구속-보석-집행유예 순서로 마무리될 수 있지만 국세청은 다르다"며 "탈세나 편법 증여 혐의가 포착돼 거액의 세금을 내야 할 상황이 온다면 현대차 후계 작업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 국세청 직원이 참여했다는 점도 현대차를 긴장시키고 있다. 편법 증여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를 포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조사 이후 정 사장에게 거액의 추징금이 선고될 경우 현대차의 승계 구도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 국세청, 다른 기업으로 확대하나=전군표 국세청장은 대선을 앞두고 기업 비자금이나 고의적 탈세 기업에 대한 철저한 세무조사를 강조해 왔다. 그래서 다른 대기업들도 국세청의 현대차 세무조사를 남의 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세청 내부에서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현대차에 대한 세무조사는 규정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국세청으로선 검찰 고발 사건에 대해 조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대선 시즌과 맞아떨어졌을 뿐이란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국세청의 현대차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경영권 승계를 포함해 추가 의혹이 나오거나 확인된다면 불똥은 재계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국세청이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대선 비자금을 손보겠다고 작정할 경우 세무조사가 다른 기업에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세청이 기업의 세금 탈루 정도에 따라 조사 범위를 확대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계산 속에 현대차 비자금 수사에 대한 2심 공판이 27일 시작된다. 현대차그룹은 법원의 판결과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김태진.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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