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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돌출 언행'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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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용 대림 명예회장.


중앙SUNDAY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뽑는 과정에서 이준용(69) 대림그룹 명예회장은 왜 잇따라 돌출 행동을 했을까. 기자는 그의 속내가 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달 초 비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며칠 뒤 이 명예회장이 기자의 휴대폰으로 불쑥 전화를 해 “나 이준용이오”라며 몇 마디를 털어놨다. 최근 자신의 ‘소신발언’에 대한 해명이었다.

“난 조석래씨(전경련 회장ㆍ효성)를 견제한 적이 없다. 평소 내 기준대로 나이 얘기(70세 불가론)를 한 것뿐인데. 다른 사람까지 내 기준에 반드시 맞춰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도 역시 이상하지 않나? 평소 하지 않던 말을 전경련에 가서 불쑥 지껄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 주변에서도 나를 그런 사람이려니 하는 것 아닌가.”

이 명예회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전문경영인)에게 그가 소신발언을 잇따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우리 회장님은 다른 회장들과 다르지 않으냐”며 “나는 그가 솔직해서 좋다”고 말했다. 국회 5공 청문회 때 다른 기업 회장들은 정치자금 제공 사실을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은 35억원의 정치자금을 줬다고 떳떳이 밝히면서 “xx했다고 내가 돈을 그냥 주냐. 저쪽에서 달라는데 어떻게 안 주느냐”고 했다. 1995년말 비자금 사건으로 30대 그룹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갔을 때 검찰에서 “하루 이틀 내에 오시라”고 했다. 그러자 “지금 시간 있으니 가겠다”며 바로 출두했다. 재계에서는 ‘전격소환’이라며 소동이 벌어졌다. “하루이틀 늦춘다고 달라질 게 뭐 있느냐”며 그는 주변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거짓말은 않는다’와 ‘할 말은 한다’는 소신이 있다. 회사 내에서는 “회장님이 선비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다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전경련 총회날인 지난 20일 이 명예회장은 강신호 전 회장과 조건호 상근 부회장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조 부회장이 강신호 회장의 생신이 3월 27일이고, 주총이 3월 29일이므로 그때까지 전경련 회장직을 유지해 주자”고 했다며 “그러나 인터넷 검색 결과 강 회장 생신이 5월 13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부회장과 강 회장이 거짓말을 했음을 폭로하기 위해 인터넷까지 뒤졌다는 얘기다. 그는 비서실에 지시해 조인스 인물정보 자료를 챙겼다고 한다. 결혼 스토리도 있다. 재계에 ‘정략 결혼’이 유행하던 때 그는 평범한 집안의 한경진 여사와 연애결혼했다. 양가의 반대에 부닥쳤지만 소신으로 극복했다.

그는 소신 발언뿐 아니라 ‘소신 경영’도 한다. 1993년 회장에 오른 그는 지난해 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70세가 넘으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70세다. 실제로 지난 9일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에서 빠졌다. 그룹 경영을 전문경영인인 이용구 회장에게 넘겼다. 3남2녀를 뒀지만 경영참여는 장남인 이해욱(39) 대림산업 부사장뿐이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배구조도 대림코퍼레이션을 축으로 수직계열화해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이유를 물었다.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 (전문경영인 체제니 하는) 그런 고급스러운 말은 모른다. 모(母)회사가 건설 아니냐. ‘내 회사’ 음…그렇게 얘기하면 이상하지만, ‘내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도 나이가 들어서… 내가 주물러 터뜨리는 것보다 후배들 시키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물러났다.”

이용구 회장은 “회장님 밑에서 사장을 6~7년 하면서 큰 내용만 보고했고 그도 간섭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분업이 잘돼 있다”고 했다.

소신 경영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

대림은 일찌감치 전문경영체제로 바꿔 그가 일선에서 후퇴했음에도 시장의 동요가 없었다. 삼성증권 허문욱 애널리스트는 “전문경영인체제인데도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도급사업 중심의 보수경영을 탈피해 해외사업 진출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외 물량을 잇따라 수주해 ‘비상(飛上)’ 중이다. 올 2월 쿠웨이트 파이프라인 공사를 시작으로 최근 7억 달러짜리 이란 정유공장 증설 공사를 따냈다. 올 들어 21억3000만 달러의 수주 실적이다. 지난해 전체 해외 수주 실적보다 6배나 많다. 주가도 뛰어 지난 23일 현재 8만4000원대다. 황제주로 군림하던 GS건설을 제쳤다. 미래에셋증권 변성진 애널리스트는 “이란 공사 수주로 앞으로 이어질 대규모 수주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며 “대림은 제2의 전성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소신 행보는 마찰음도 있다. 2001년에 경기고 14년 후배인 한화 김승연 회장과 감정 싸움을 벌였다. 99년 빅딜(대기업 간 사업교환)로 공동 경영하던 석유화학공장인 여천 NCC의 파업이 발단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경찰을 철수시킨 뒤 노조와 협상을 해 파업을 유보시켰다. ‘원칙 대응’을 강조한 한화가 ‘이면합의설’ 등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격분한 이 명예회장은 기자회견을 해 “한화가 터무니없는 의혹을 퍼뜨리고 있다”고 역공을 했다. “김승연 회장님, 한번 만나 달라”는 신문광고까지 했다. 양측의 갈등은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두 회장의 개인적 앙금은 가시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강신호 회장의 3연임을 비판한 그는 사실 2005년에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봐도 강 회장님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 없다”며 추대발언을 했다.

이 명예회장의 행보는 단지 개인 성향이 아니라 집안 내력이라는 말도 있다.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故) 이재준 회장도 ‘소신과 고집’으로 재계에 많은 일화를 남겼다.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당시 청와대 인사의 청탁을 거절했던 일이 화제가 됐다. 이재형 전 국회의장(작고)이 이 명예회장의 백부다.

허귀식·조민근 기자 ksline@joongang.co.kr


전경련 문제점을 지적한 이 명예회장의 8장짜리 자필원고

누가 뭐래도 '할 말은 한다' '거짓말 안 한다' 지론 실천 때문?

이준용 명예회장은 20일 신임 전경련 회장을 추대하는 총회에 나와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불쑥 8장짜리 자필 원고를 나눠줬다.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심경을 담은 육필 원고를 공개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전경련 조직에 대한 그의 불만을 표출한 것이 주요 내용이지만 글자 하나하나에 경영인으로서 평소 그의 생각과 철학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본지는 이를 전문 그대로 게재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한문 표기와 잘못된 철자까지도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오늘은 새 회장을 선출한 매우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지난 1월 25일 新羅호텔 모임 이후 2個月 가까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많은 부회장이 까닭없이 反目하는 것처럼 보이게도 하고 많은 副會長들을 좀 정신 나간 사람들같이 보이기도 한 연유를 좀 밝히고 지나가야 하겠고 또 어제 會長團 회의에서 강신호 회장님과 事務局이 드디어 3연임을 완전포기 하였구나 하고 처음으로 확인은 하였으나, 지난 2個月 동안 이분들이 전경련의 위상에 너무 큰 상처를 남겨 놓았기 때문에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러나시는 姜會長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서는 道理도 아니고 전경련이라는 공직에 큰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저에게 염려의 助言을 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분을 直接 받들고 모신 事務局 직원들의 어려움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事案의 핵심」,「해프닝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 보니, 횡설수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좌충우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참 고약하게 된 것 같습니다. 오랜 苦心 끝에 제가 끝까지 惡役을 맡기로 결심을 했고, 앞으로 全經聯 運營에 도움을 주기 爲해서 서너가지의 해프닝을 정리, 보고 드리고져 합니다. 지난 1월 25일 신라호텔 모임에서의 해프닝. 굳이 事務局의 간곡한 얘기가 없었더래도, 강會長이 한번 더 맡아 주셔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저녁 먹고 오면서는 “어떻게 하든 강회장의 3연임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했음으로 중언부언 않겠습니다.

지난 2월 27일 定期總會 날 저의 發言中에 姜會長님과 이준용 사이에 있었던 電話通話에서 제가 추천했다는 그 副會長,“내일 모레면 환갑”이라는 바로 그 사람, 너무 어려 안 된다는 그 사람, (잊지 않았나요?->지움)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姜會長님은 벌써 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은, 姜會長께서 바로 그 副會長에게도 같은 목적으로 通話하시며,“당신 한번 해보지”하셨답니다.

姜會長님, 지난 年間 全經聯 이끄시느라, 너무 고생 많이 하셨고, 피곤하십니다. 이젠, 좀 여유시간을 가지고 쉬셔야 합니다. 미련을 떨치십시오. 이것이 그 동안 姜會長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또 가까이 모셨던 몇몇 副會長들의 苦言임을 헤아려 주십시오.
人事문제는, 會長選出이나 副會長영입이나 똑같이 치밀하게 다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人事對象者에 對한 예의부재, 保安不在, 절제되지 않은 報道등, 여러 가지 허술한 난맥상과, “事務局 所任”의 限界도 모르고 무분별한 發說을 함으로서 많은 혼선을 야기한 사무국의 책임은 마땅히 짚고 너머가야 하겠다 생각합니다. (1月 31日字 헤럴드 경제)
2월 27일 總會當日 전형위원 회의에서의 해프닝입니다. 2월 21일 조선호텔모임을 “물러나시는 姜會長”이라는 전제하 全權을 위임한 모임으로 볼 때, 3月달 임시총회로 다시 미루어진 것은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때까지도 3연임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또 있습니다.
설상가상 격으로, 조건호 상근 부회장은 本人에게 총회가 끝 난지 1주일 후인 3月6日인가 7 日 전화를 걸어, 김준성 회장께서 정해주신 3月 20日 임시총회를 “한 2週日 연기”해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연유를 물은즉, 3月 27日이 姜會長 生辰이고, 東亞製藥의 株總이 3月 29日 이니까, 表現을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은, 그때까지 全經聯 會長 직함을 가지고 계시도록 하는 것이, 그 동안 받들었던 사람들의 마지막 人情이라든가 뭐라든가... 저도 벌써 나이 70이니까 잘 (생각->지움)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決定을 할 자격도 없고 하니 김준성 회장께나 말씀드려보라고 말하고 出張길에 올랐었습니다. 나중에 通告 온 것을 보니 김준성 회장께서 20 日(오늘)일자 변경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회원사 여러분 3月 6日, 3月 7日까지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지난달 27日 총회날 전형위원회에 들어가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會員社 여러분,
대저 人事문제란 것이 이심전심의 비법으로 많은 부분이 意思소통되어야 할 事案임에 불구하고, 이 지경까지 끌고 온 것, 副會長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全經聯 組織에 기여한 것은 없지만, 10年 넘게 副會長이란 이름으로 인연을 맺어온 사람으로, 또 公人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우물쭈물하는 것이 公組織을 爲하는 길이 아니라고 믿고 그나마 핵심을 밝히기로 決心하게 되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쇼. 또 저도,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꽤 되는 식구를 거느리고 企業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핵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꼴을 우리 식구들에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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