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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배우賞 명단 지켜라" 보안작전 007 뺨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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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최근 TV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을 봤는데 상을 타는 배우들은 수상 사실을 미리 알고 오나.

A: 떨리는 목소리, 눈물 한 방울 없다면 미리 알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만하다. 가령 '살인의 추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는 담담하기 그지 없는 포커 페이스로 단상에 올라 이런 의혹(!)을 부추겼다. 그러나 영화제 측은 펄쩍 뛴다. 사전에 미리 알 수 없음은 물론, 현장에서도 언질 한 마디 주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난 가족'의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몇년 전만 해도 현장에서 귀띔을 해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문소리(여우주연상)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철통 보안을 하는 이유는 대개 시상 결과에 따른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사전 통보를 할 경우 소문이 나버리면 다른 후보자들이 참석을 꺼리기 때문에 자칫 시상식장이 썰렁해질 우려가 있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심사 결과도 시상식 당일에 나오는 수가 많다. 그래서 11일 열리는 청룡 영화상은 트로피를 미리 만들어놓은 뒤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 결과가 나오는 대로 현장에 대기 중이던 트로피 제작업자가 부랴부랴 이름을 새긴다.

비밀 엄수도 좋지만 이는 자칫 자리를 빛내야할 스타들의 불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영화제 관계자들의 으뜸가는 사명은 섭외다. 시상식이 열리기 훨씬 전부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를 해서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도 전화를 자주 하니 짜증을 부리는 배우들도 있다. 한 제작자의 고백. "하도 여러번 연락이 오니까 아, 이번에 상을 받는구나 싶더라고요."

한 영화상 측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 중인 두 꽃미남 장동건.원빈에게 시상식 중간에 '태극기 휘날리며'홍보용 퍼포먼스를 할 수 있도록 해줄테니 참석해달라는 '미끼'를 던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한 건 이러한 섭외 전쟁이 영화인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권위있는 영화상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카데미상이 하루아침에 미국 영화인들의 잔치가 된 건 아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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